아놔 기자되기 참 쉽네 by 앨런비

남의 연재글 표현까지 배끼냐?

역개루 카페에서 이벤트 진행. by 앨런비

네이버 역개루 카페에서 류한수 교수님과의 대화 이벤트를 실시합니다.


요청을 받아서 광고 ㄱㄱㄱ

난 질문으로 뭘 쓰면 될려나 ㅇㅅㅇ

조선의_강제이주_크라스.txt by 앨런비

의금부(義禁府)에서 아뢰기를,

"사헌부(司憲府)의 금란 서리(禁亂書吏) 김경손(金敬孫)과 나장(羅將) 조승로(趙承老) 등이 저자 사람들과 모여 술을 마신 죄는, 그 율(律)이 장(杖) 70대에 해당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제 사헌부(司憲府) 아리(衙吏)의 소행을 보니, 만약 부호(富豪)로서 뇌물을 바치는 자가 있다면 비록 금하는 것을 범하였더라도 반드시 놓아주고, 그들이 잡는 자는 다 외방(外方)의 의뢰할 데 없는 사람일 뿐이다. 경성(京城) 안은 왕화(王化)735) 가 지극히 가까운 곳인데도 오히려 또한 이와 같으니, 하물며 외방(外方)이겠는가? 이 무리의 죄가 무거우니, 평안도로 옮겨 살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였다. 도승지(都承旨) 권건(權健)·좌부승지(左副承旨) 이세우(李世佑)가 아뢰기를,

"변방(邊方)으로 옮기는 것은, 이것이 율문(律文) 밖의 일입니다. 이 뒤에 범하는 자가 있으면 이와 같이 죄를 결단하여도 괜찮을 듯하나, 지금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좌승지(左承旨) 성건(成健)·우부승지(右副承旨) 이조양(李朝陽)·동부승지(同副承旨) 윤은로(尹殷老)는 아뢰기를,

"이것이 비록 율문 밖의 일이기는 하나, 근일에 율문 밖의 일로 사변(徙邊)736) 한 자도 자못 많습니다. 이 무리의 죄가 크니, 사변하게 하여서 한 명을 징계하여 여러 사람을 경계하게 하는 것도 방애(妨礙)됨이 없을 듯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비록 율문 밖의 일이지만 이 무리의 죄가 무거우니, 전가 사변(全家徙邊)737) 하게 하고, 지금부터 항식(恒式)으로 삼도록 하라."

하였다.




금주령인데 술마셨으니 강제이주 ^오^




성종실록 48권, 성종 5년 10월 13일 을미 2번째기사 1474년 명 성화(成化) 10년 공주의 정병 임무손이 계모의 무덤을 파서 이장한 죄를 처벌하다국역원문 . 원본 보기
형조(刑曹)에서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의 계본(啓本)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공주(公州)의 정병(正兵) 임무손(林茂孫)이 계모(繼母) 신씨(申氏)의 무덤을 파서 이장(移葬)한 죄는 율이 참형(斬刑)에 해당됩니다마는 일이 특사(特赦)가 있기 전에 있었으므로 준례(遵例)로는 마땅히 용서를 입을 만합니다마는, 그러나 임무손의 죄악(罪惡)이 깊고 중하므로 특사에 통과했다는 것으로 논하여 아주 석방(釋放)함은 불가하니, 청컨대 전가 사변(全家徙邊)870) 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계모를 이장하는 참형에 해당하는 싸가지 없는 짓을 했지만 봐줘서 강제이주 ^오^




성종실록 199권, 성종 18년 1월 15일 병진 2번째기사 1487년 명 성화(成化) 23년 형조에서 공천 등이 홍경 등지에서 선음하는 것을 엄금하도록 아뢰다국역원문 . 원본 보기
형조(刑曹)에서 아뢰기를,

"공천(公賤)·사천(私賤)과 양인(良人)의 여자들이 홍경(弘慶)·덕평(德平) 등지에 떼로 모여서 선음(宣淫)을 날마다 일삼는데, 원주(院主)와 마을 사람들도 그들이 주는 것을 이롭게 여겨 용납하여 살게 하고 간음(姦淫)을 행하도록 하니, 풍속을 허물어뜨림이 이보다 심함이 없습니다. 관할 수령으로 하여금 엄하게 단속하고 적발하게 하여 남녀 모두 율문(律文)으로 범간조(犯奸條)에 의하여 두 등급을 더해서 죄를 과(科)하도록 하고, 천구(賤口)는 관주(官主)027) 에게 돌려주며, 양녀(良女)는 관할 고을이나 여러 역(驛) 가운데에 종으로 영속(永屬)시키고, 용납하여 살게 한 호수(戶首)는 율(律)에 의해 논죄한 뒤에 전가 사변(全家徙邊)시키도록 하소서. 그리고 그 도의 관찰사에게는 강직하고 명민한 수령을 골라서 불시에 적간(摘奸)하게 하되 만일 검거하지 못하면 수령 및 권농(勸農)028) ·이정(里正)029) ·절린(切隣)030) 등은 제서유위율(制書有違律)031) 로 논단(論斷)하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같이 모여서 쎾쓰하게 노니 강제이주 ^오^




성종실록 228권, 성종 20년 5월 9일 병인 2번째기사 1489년 명 홍치(弘治) 2년 경상도 관찰사 김여석 등에게 허물어진 민간 습속을 혁파하도록 하다국역원문 . 원본 보기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김여석(金礪石)·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 이집(李諿)·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최응현(崔應賢)에게 유시하기를,

"무릇 제사와 장사를 치르는 예(禮)는 성인(聖人)이 매우 상세히 제도를 만들었으니 자식 된 이들은 한결같이 이 법을 따름이 마땅하다. 그렇지 아니하여 예를 어그러뜨리고 제도를 문란시킨다면 왕법(王法)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들으니, 본도(本道)의 민속(民俗)에 어버이를 장사지낼 때 주식(酒食)을 많이 마련해 놓고 마을 사람들을 널리 모아 배우들의 온갖 잡희(雜戲)를 못하는 것이 없이 한다고 한다. 가슴을 치고 통곡해야 할 때에 남정네와 여인들이 뒤섞여 밤새도록 술을 마시면서 상례(喪禮)의 기강을 무너뜨림이 이렇게 심하니, 인간의 마음을 가진 자로서 차마 듣지 못할 일이다. 또 제수(祭需)도 풍성하고 사치하기에 힘써서 한번의 제사에 드는 비용으로 거의 파산(破産)하는 데 이를 지경이라고 한다. 부자는 그만이거니와 가난한 자들은 마련할 힘도 없어 어버이의 유해(遺骸)를 드러내 놓고 때가 지나도록 장례를 지내지 못한다고 하는데,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진실로 놀랍다. 나무에 올라 노래를 부르자 성인(聖人)이 나무라셨고407) , 머리를 산발하고 제사를 드리자 신유(辛有)가 탄식하였다.408) 지금 허물어진 민간 습속이 어찌 나무에 올라가고 머리를 풀어헤치는 데만 그칠 것인가? 그 끼칠 폐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전에도 하유(下諭)하여 엄하게 혁파하도록 했는데 이러한 풍습이 아직도 다 근절되지 않았다. 지금부터 민간에서 전과 같이 다시 이런 일을 한다면 무거운 벌을 가하고 전가 사변(全家徙邊)하겠다. 이러한 뜻을 널리 깨우쳐서 궁벽한 백성들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게 하라."

하였다.




장례식에 곡소리 안하고 춤추고 자빠지니 강제이주 ^오^




성종실록 262권, 성종 23년 2월 11일 임자 4번째기사 1492년 명 홍치(弘治) 5년 한성부에서 나쁜 쌀을 파는 사람을 전가 사변할 것과 그 인보도 죄줄 것을 청하나 듣지 않다국역원문 . 원본 보기
한성부(漢城府)에서 아뢰기를,

"청컨대 시장 사람[市人]으로서 악미(惡米)116) 를 쓰는 자는 전가 사변(全家徙邊)117) 하고, 아울러 인보(隣保)118) 까지도 죄주게 하소서."

하니, 명하여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의논하게 하였다. 심회(沈澮)는 의논하기를,

"전가 사변(全家徙邊)은 너무 무거우니, 청컨대 제서 유위율(制書有違律)119) 로 논하게 하소서."

하였고, 윤필상(尹弼商)은 의논하기를,

"아뢴 대로 시행케 하소서."

하였고, 홍응(洪應)은 의논하기를,

"이 일은 거행하기가 어렵겠습니다. 만약 간사함을 억제하려고 날마다 그 법(法)을 늘리게 되면, 국가의 위령(威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악미(惡米) 때문에 전가 사변(全家徙邊)한다는 것은 너무 무거우며, 잡물(雜物)을 섞어서 악미를 만드는 것은 잠깐 사이에 있는 일이므로, 비록 함께 사는 자라도 오히려 알 수가 없는 것인데, 더욱이 인보(隣保)이겠습니까? 근래에 법이 인정(人情)을 따르지 않는 것이 많은데, 이 일은 더욱 심합니다."

하니, 임금이 홍응(洪應)의 의논을 따랐다.




똥쌀을 파니 강제이주 ^오^




성종실록 262권, 성종 23년 2월 24일 을축 1번째기사 1492년 명 홍치(弘治) 5년 형조에서 소를 잡는 것을 금하는 조문을 아뢰다국역원문 . 원본 보기
형조(刑曹)에서 소를 잡는 것을 금하는 조문(條文)을 아뢰기를,

"1. 거골장(去骨匠)을 장부에 기록하여 관령(管領)152) ·절린(切隣)에게 보증[保授]하게 하고, 본조(本曹)에서 간혹 사람을 보내어 그 간악(奸惡)함을 적발하게 하되, 범한 자가 있으면 율(律)에 의거하여 논죄(論罪)해서 전가 사변(全家徙邊)하게 하고, 그 관령과 인보(隣保)는 실정을 알고도 죄인을 숨겨 준 율(律)로 과단(科斷)하게 하소서.

1.〈범인을〉 잡아서 고한 자는 《대전(大典)》에 의거하여 논상(論賞)하고, 아울러 잡은 소의 가죽과 고기도 주게 하소서."

하였다.




소를 잡으면 강제이주 ^오^





성종실록 253권, 성종 22년 5월 12일 정해 6번째기사 1491년 명 홍치(弘治) 4년 형조에 전지를 내려 지친간에 서로 다퉈 풍속을 어지럽히는 자를 전가 사변시키도록 하다국역원문 . 원본 보기
형조(刑曹)에 전지(傳旨)하기를,

"지친(至親)한 사람은 한 몸뚱이에서 나누어진 것이니, 숙질(叔姪)은 부자(父子)의 의리(義理)가 있고, 형제(兄弟)는 천륜(天倫)의 중(重)함이 되니, 마땅히 화목(和睦)한 행실을 힘써서 독후(篤厚)한 풍속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옛날에 왕상(王商)573) 이 후왕(侯王)이 되자 재물을 미루어 아우에게 주었으며, 설포(薛包)574) 는 재물을 나눌 적에 나쁜 물건을 자기가 가졌으니, 아아! 저들은 어떻게 수양(修養)했기에 이에 이르게 되었는가? 지금 세상의 사람은 습속(習俗)이 경솔 부박(浮薄)하기 때문에 비록 한 사람의 종과 한 필의 전지(田地)의 하찮은 물건일지라도 반드시 관청에서 서로 송사(訟事)하여 눈을 흘기면서 서로 헐뜯어 마침내 원수가 되니, 골육(骨肉)을 잔상(殘傷)시킴이 이보다 심한 것은 없다. 지금 서북(西北) 양도(兩道)에서는 인가(人家)가 적어서 빈 땅이 황폐하여 쓸쓸하니, 죄가 없는 백성들도 오히려 옮겨서 채우고 있는데, 그 간사한 죄인은 이를 옮겨도 무엇이 근심될 것인가? 무릇 친속(親屬)이 서로 송사하는 것은 스스로 일정한 법이 있으니 죄에 있어 용서할 수가 없지마는, 그러나 지친(至親)과 소족(踈族)은 진실로 죄과(罪科)가 달라야 되니, 지금부터 후에는 같이 난 형제(兄弟)와 삼촌 숙질(三寸叔姪)과 사촌 형제(四寸兄弟)의 사이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투는 단서(端緖)를 만들어 간사한 짓이 환하게 나타난 자는 전가 사변(全家徙邊)시켜서 풍속을 후하게 하고 변방을 채우게 하라."

하였다.




친척간에 싸우니 강제이주 ^오^




성종실록 291권, 성종 25년 6월 16일 계유 5번째기사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고을 현감을 무고한 청양인 이검송을 전가족과 함께 변방으로 들어가 살게 하다국역원문 . 원본 보기
사헌부(司憲府)에서 충청도 관찰사(忠淸道觀察使) 윤탄(尹坦)의 계본(啓本)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청양인(靑陽人) 이검송(李儉松) 등이 그의 사원(私怨)으로 정산현(定山縣)에 이르러, 밤을 타서 산에 올라가 현감(縣監) 서종수(徐宗秀)를 꾸짖고, 또 서종수의 불법(不法)한 일을 말하여 관찰사(觀察使)에게 알리도록 하였으므로, 즉시 이졸(吏卒)을 보내어 체포하여 안치(按治)하게 하였더니, 일이 모두 무실(無實)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민(小民)으로서 수령(守令)을 무함(誣陷)하고 모욕한 것은 풍교(風敎)에 관계(關係)가 있으니, 비록 일이 사유(赦宥) 전에 있더라도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컨대 전가 사변(全家徙邊)722) 하소서."

하니, 명하여 대신(大臣)에게 의논하게 하였다. 윤필상(尹弼商)·노사신(盧思愼)·윤호(尹壕)·한치형(韓致亨)·유지(柳輊)·윤효손(尹孝孫)이 의논하기를,

"아뢴 대로 시행함이 편하겠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무고죄니 강제이주 ^오^




성종실록 291권, 성종 25년 6월 27일 갑신 2번째기사 1494년 명 홍치(弘治) 7년 의정부에서 임광재의 양첩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상벌이 과중함을 아뢰다국역원문 . 원본 보기
의정부(議政府)에서 사인(舍人) 이수언(李粹彦)으로 하여금 와서 아뢰게 하기를,

"임광재(任光載)의 양첩(良妾)을 추구하여 알아내는 연고로 전지(傳旨)를 내리시고 간략히 이르시기를, ‘실정을 알고서도 감추고 숨겨둔 자는 양천(良賤)을 물론(勿論)하고 전가 사변(全家徙邊)하고, 알고서 고(告)하지 않는 자는 절린(切隣)과 관령(管領)을 제서 유위율(制書有違律)로써 논단(論斷)한다.’고 하셨는데, 신 등이 생각하기에는 이는 국가의 긴관(緊關)한 일이 아니니, 상벌(賞罰)의 법(法)이 너무 중(重)한 것 같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는 비록 작은 일이나 소민(小民)이 국가에서 추문(推問)할 때 사실대로 고하지 않는 것이 어찌 옳겠는가? 정승(政丞)은 장차 추국하지 않고서 그냥 두려고 하였는가?"

하였다.




위증죄니 강제이주 ^오^




연산군일기 43권, 연산 8년 4월 25일 병인 3번째기사 1502년 명 홍치(弘治) 15년 형조에서 고을 원에게 욕설을 한 석산을 사민할 것을 건의하다국역원문 . 원본 보기
형조가 아뢰기를,

"강원도 백성 석산(石山)이 고을 원에게 면전에서 욕을 하며 죽이겠다는 말까지 한 것은 풍교(風敎)에 관계되는 일이니, 온 가족을 변방에 옮기기를[全家徙邊]청합니다."

하니, 그대로 좇았다.




사또에게 욕하면서 개기니 강제이주 ^오^





이렇게까지가 성종 ver.

그 결과 성종은 묘비에 이렇게 새겨지도다.


 신해년에 명하여 지금부터 형제(兄弟)·숙질(叔姪)·당형제(堂兄弟)가 서로 소송하여 도리에 어긋난 자는 사변(徙邊)하게 하셨으며, 영안도(永安道)에 야인(野人)이 침략하여 진장(鎭將)을 죽이니 군사를 보내어 토벌하여 격파하셨다. 




오오 우리 성종 싸가지없는 쉐키들을 강제이주로 교화하셨음 ^오^




한편 연산군은?




연산군일기 57권, 연산 11년 1월 12일 무술 8번째기사 1505년 명 홍치(弘治) 18년 상에 관한 일을 말한 자는 연좌하여 극형에 처하도록 전교하다국역원문 . 원본 보기
전교하기를,

"상에 관한 일은 입으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따금 변변치 못한 무리가 있어 자주 부도(不道)한 말을 내니, 징계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이러한 자가 있거든, 당사자는 마디 내어 베어 죽이고, 부자·형제는 참형(斬刑)에 처하고, 동·이성(同異姓) 사촌은 남녀를 물론하고 모두 장형(杖刑)에 처하여 전가 사변(全家徙邊)하라."

하였다.




위를 능멸하니 강제이주 ^오^




연산군일기 60권, 연산 11년 12월 11일 신유 2번째기사 1505년 명 홍치(弘治) 18년 운평악 등이 주악하는 동안에 한 노래를 재창하지 못하게 하다국역원문 . 원본 보기
전교하기를,

"흥청을 두고 음악을 잡힘은 화청과 화협을 주로 하는 것이다. 전자에 이미 주악하는 사람에게 한 가지 노래만 거듭 부르지 못하게 하고, 어긴 자는 치죄하게 하였는데도 아직까지 봉행하지 않으니, 임금의 명하는 바는 죽어도 피하지 않는 것이어늘, 하물며 노래를 부르는 자는 노래와 춤만으로 업을 하는데 이와 같이 완만하랴. 이것은 법이 가벼워서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이다. 노래를 부르는데 잘못한 것이 비록 조그마한 일 같지만, 위의 명을 좇지 않은 것은 그 죄가 크니, 앞으로 취홍원(聚紅院)·뇌영원(蕾英院)의 가흥청(假興淸)·속홍악(續紅樂)·채래인(採來人)·운평악(運平樂) 등은, 한 번 주악하는 동안에 한 노래를 재창하지 말도록 하라. 범하는 자는 기훼제서율(棄毁制書律)로 그 부모 형제를 장 1백에 처하고 전가 사변(全家徙邊)하며 완만함을 징계하여 후인을 경계케 하라."

하였다.




흥청망청에서 노래 한가지만 부르니 강제이주 ^오^







간단요약 : 장형에서 참형사이 어중간하면서 경국대전에 제대로 안나온 죄들은 귀찮다고 강제이주, 즉 전가사변 처리. 전가사변은 개인만이 아닌 가족까지 모두 강제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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