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공화정 말기에 대한 잡상 (1) by 앨런비

로마 공화정 말기는 분명 혼돈과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일반적인 표현으로 하면 풍요속의 빈곤, 퇴폐적인 번영 정도가 될려나? 로마 공화정은 기원전 2세기 중후반이 되면 급속확장에 이은 소화불량증상을 심하게 보여주고 있었고,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도 결과적으로 실패하였다. 그리고 시작된 것이 원로원의 경직화. 원로원의 경직화는 카이사르 동인녀인 시오노 할망구처럼 악의 축인양 말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무시할 수가 없는 현상이다. 원로원은 이미 제국화가 되어가던 로마에 어울리지 않는, 로마'시' '파트리키우스' 집단의 대변자가 되며, 로마'제국'이나 로마'시'의 대변은 커녕, 그 중 일부인 '파트리키우스'들의 이익집단이 되었다. 즉 원로원의 정치는 제국에 걸맞기는 커녕, 도시국가의 정치에도 결과적으로 맞지 않게 되는 상황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런 문제는 바로 급격한 확장에 기인한 것이었다. 로마의 확장은 전형적인 지중해 도시국가의 형태를 보여주었다. 확실치는 않은 라틴 동맹은 델로스 동맹 초기, 켈트족에게 약탈당한 후 만든 로마 연합은 아테네 제국화된 델로스 동맹에 비유할 수 있는, 전형적인 League의 형태를 보여주었다. 그래도 로마의 확장은 포에니 전쟁 때까지는 잘 굴러간 편이었다. 로마는 동맹국들을 속국으로 부려먹는 다른 League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긴 했으나, 부에서 보다는 군사적인 면모를 더욱 강하게 띄었고, 로마시민 자신의 군사력 착출은 동맹시를 압도하였기 때문에, 포에니 전쟁 때까지는 동맹시들이 불만을 가질 일이 별로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로마의 최대의 위기였던,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로마 '제국'의 시점이 되었던 한니발 전쟁 이후로 로마 연합은 큰 한계를 보이게 되었다. 1차 포에니 전쟁은 시칠리아에서 예정된 충돌을, 전간기의 일리리아-갈리아 키살피나 공격 또한 해적이나 갈리아인의 문제로 예정된 충돌이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그 이후 그리스-이베리아의 개입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필요는 했으나,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는 곳으로, 하지만 약탈하면 엄청난 수익이 예상되는 곳으로 확장을 시작한 것이다. 이 행동은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할망구처럼 로마인의 당위성이라고만은 할 수가 없다. 시오노 할망구는 직접세등만 말하고 있고, 실질적으로는 속주 탈탈 털어버리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부패를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만 갔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온다. 바로 이탈리아의 대 풍요와, 로마 시민권자와 이탈리아인의 차별이다. 

로마는 한니발 전쟁 이후 '제국'이 되었다. 사실상 이즈음부터 Imperium Romanum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Imperium의 의미가 제정으로 정착된 것은 제정 이후라고 봐야겠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기원전 2세기 말의 로마는 Imperium이었다. Senatus Populus Que Romanus는 여전히 유효했지만 Populus Romanus의 힘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국화로 갑자기 쏟아져들어온 부와,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지나친 병역요구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며 새로운 갈등을 만들었고, 원로원의 이익집단화로 이어졌다. 위에서 언급한 Patricius집단의 이익집단인 원로원으로, 라틴어가 맞나는 모르겠지만 굳이 만든다면 Senatus Romanus중에서도 Senatus Patricius정도로 변했다고 보면 될려나? 동사변환과 명사변환이 골아프게 하는 라틴어는 여기까지만 패스. 괜히 쓴 듯 하다.;

그것을 일부나마 처리하기 위한 개혁이 다들 아는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했다. 시민당이란 새로운 당을 창출하긴 했지만 그이상의 문제가 생겼으니, 원로원당, 즉 로마'시' 파트리키우스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이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사실상 고착화된 여당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로마는 크게 약화되었으나, 군사력으로는 그나마 마리우스의 개혁으로 만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긴 문제는 다들 아는 군단병의 사병화. 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로마'시'의 정치인 로마 공화국의 문제를 여실하게 보여주며, 어떤 의미로는 더욱 심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이거야 뭐 다들 상식적으로 아는 야기지만, 내전의 시작이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집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바로 동맹시 전쟁. 동맹시 전쟁은 일반적인 개론서와는 달리 로마가 그래도 군사적으로 밀고 나간 후 예전 동맹시에게 시민권을 준 것이지만, 그것은 넘어가고,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갑자기 쏟아져들어온 부로 인한 로마 시민과 동맹시 시민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결국 이것도 전형적인 도시국가에서 갑자기 제국이 된 로마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로마시-동맹국의 관계는 위에서 말했다시피 아주 전형적인 도시국가의 확장형태였다. 하지만 제국이 되면서 속주가 대량으로 생기니 이 형태는 결국 로마만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고, 그 부도 어쩔 수 없이 로마에 훨신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맹시 전쟁 이전이나 후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 로마는 이미 제국에 가까웠지만 너무나도 도시 국가에 맞는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로마는 로마에 사는 로마 시민의 정치, 그리고 그 중에서 로마에 사는 로마 시민중 상위층인 파트리키우스 중심으로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계속 유지했다. 물론 동맹시 전쟁으로 동맹국에게도 로마 시민권이 수여되었지만, 500만이나 되는 그들이 정치 논의 때마다 모두 로마시에 모여서 정치를 한다? 이것은 불가능하고, 재대로 되지도 않았다. 이러나 저러나 결국 로마에 사는 로마 시민이 정치를 하는 구조인, 여전히 도시 국가에나 맞는 정책이 유지되었고, 동맹시 전쟁과 마리우스의 개혁으로 새로운 문제까지 터진다. 바로 상경이다.

로마 시민이라 해 봤자 그 중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신분은 제한되었다. 어차피 재산별로 투표를 먼저 하는 센스니 파트리키우스 먼저, 기사 계급 다음이지만, 여기에 로마 시민으로써 정치 참여의 권리가 있는 퇴역 군단병이 상경하면 어떨까? 바로 투표는 왜곡된다. 이는 마리우스 이후 여실하게 나타난 문제이다. 제국이 되어봤자 여전히 도시 국가에나 걸맞는 정치를 하고, 하지만 시민권자는 곳곳에 흩어져있고, 로마가 아무리 대도시라고 해봤자 이미 사병화된 군단병을 상경만 시켜도 공개적인 투표 조작이 가능한 상황에서 로마의 정치가 제국에 걸맞는 정치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그러한 군단병을 이끄는 것은 결국 파트리키우스 집단이었다. 그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때의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 같은 케이스도 있지만 결국 그들의 생각에 투표가 좌지우지 될 수 있는 상황은 정치적으로 너무나도 결함이 크다.

고로 이러한 상경의 문제는 단순한 무력시위로만 볼 수가 없다. 정치 싸움에 더 가까운 것이다. 또한 이러한 문제는 더이상 도시국가라고 할 수 없는 로마의 정치에 여전히 불안요소로 남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어이하든지 로마 공화정은 대수술이 필요했다. 공화정의 로망을 가져 공화정이라는 이상을 지키든, 제정으로 나아가든 그것은 기존의 정치체제를 탈피하는, 즉 도시국가적이 아닌 제국에 맞는 정치제도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로마인들은 공화정에 뿌리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보수적이었다. 외부인들도 개판 5분전이라고 말한 로마의 공화정을 그들은 로마다운 것으로 여기며 사랑했다. 그런 상황에서 개혁은 단순히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제국이 되었다 한들 로마는 로마인의 것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제 주목해야할 사람들이 있으니, 누구라도 뻔히 짐작할 술라,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이다. 그 결과가 좋게 되었든 안좋게 되었든 그들이 공화정이라는 정치체계에 수술칼을 들이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까. 다만 한국에서는 시오노 할망구의 빠심 때문에 이들이 너무 과대평가된 감과, 그에 불만을 가져 반감과 짜증을 드러내는 역덕들의 문제가 있는데(...) 솔까말 제국주의자인 시오노 할망구의 빠심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들이 인물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가 없고, 솔까말 본인이 민주주의, 공화정에 빠심이 없고, 복고주의(?)적인 면모가 강한지라, 어이보면 시오노 할망구와 비슷한 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긴 하다. 그렇다고 시오노 할망구처럼 노예제가 좋았느니, 속주통치가 선정이었느니 헛소리는 씹어 버리고.

일단 술라부터 보자. 술라는 반쯤 몰락(?)했지만 분명 로마의 뿌리 깊은 파트리키우스 집안 출신이다. 그리고 그의 정치관도 파트리키우스 출신적인 면모가 있는 듯 하다. 또한 술라는 군바리였다. 반쯤(?) 몰락한 자신의 집안을 자신의 군대 커리어로 다시 세운 인물 정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배경 때문인지 술라는 군바리와 파트리키우스 양자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행동을 보여주는 듯 하다. 즉 개인적으로 시오노 할망구의 차도남 술라 이미지보다는 쿠데타 일으켜서 자기 맘대로 밀어 붙이는 군바리의 모습 같달까? 그것을 느끼는 것이 술라의 쿠데타 시기와 개혁한 방법이다.

술라의 쿠데타 조짐은 동맹시 전쟁 즈음 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술라는 나름의 교류(?)가 있던 다른 전역과는 달리 열심히 밀어붙이면서 동맹시군을 쓸어버렸고(...) 동맹시 전쟁 이후에도 자신의 권력을 위한 집념(?)이 보였다. 물론 이는 죽어라 명예를 노리는 마리우스 할배와 갈등도 크지만. 로마의 장군이 로마'시'를 공격했다는 선례만으로도 술라는 개인적으로 고평가하기 힘들다. 물론 이후에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등도 그리했지만, 선례와 뒤를 잇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그 쿠데타 이후 행동도 높게만은 평가하기 힘들어 보인다. 자신의 목적이었던 동방정벌을 하기 위해 떠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2차 쿠데타로 연결되었다. 

2차 쿠데타도 굳이 긴 설명은 필요없을 듯 하다. 하지만 충격은 과소평가할 수가 없다. 로마인들에게 내전의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으며 '아직'은 공화정의 이상에 메달릴 수 있었지만 이러한 내전이 계속된다면 평화를 위해 이상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공화국의 상황이 이미 개판이라고 보니-_-; 공화국이라는 이상에 목메일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술라의 개선도 좋게만은 보기 힘들다. 술라는 공화정을 체계화시켰다. 하지만 그가 파트리키우스 출신이라서 그런지, 그 목적은 기존 공화정 지배계급의 강화라는 방향이었다. 위에서 수도 없이 언급했다시피 로마 공화정은 이미 말기증상을 보이던 상황. 그리고 그 주원인은 로마'시'의 '파트리키우스'의 타락이니 뭐-_-;;

여튼 술라의 체계는 계속..되는 듯 했지만 술라 생전, 술라 사후, 바로 망가진다. 폼페이우스의 등장이 그것. 여기에 술라가 압살할려고 했던 호민관도 바로 부활하였으니까. 최종적으로 술라 체제를 붕괴시킨 것은 카이사르지만 폼페이우스의 특례로 이미 술라식 공화정은 붕괴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한계는 술라 자신부터 재대로 만들지 않은 결과라고 보는 것은 오바일까? 하지만 난 그런 생각이 든다. 술라의 개혁은 그냥 자기 집단의 이득을 위한 정리라고. 술라의 출신인 로마시 파트리키우스와 군인. 그 집단의 이익 보장을 위해, 시대가 필요로했던 진정한 개혁이 아닌, 보수화 정리로 보는 것이 내가 평하는 술라의 개혁이다. 물론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 강하게 들어가는 것이다.




...이까지도 너무 기니 언제 다시 쓸까는 모르겠지만 연기-_-

양덕애들 하플로 그룹 쓰레드 보다가 든 생각인데.. by 앨런비

한국에서 역덕들의 쓰레드를 만들면 나름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뭐지? by 앨런비

이제서야 트위터에서 본지 좀 된 드립 연결들이 뉴비밸 사건으로 퍼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 트윗을 봤을 때 이거 걸리면 사건되기 쉽상인데 괜찮을려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억에 남긴 했는데;;

상황을 보니 당황스럽네;;

뭐 트윗하면서 그런 상황은 진짜 일어나기 쉽다만.;

트윗의 속성 문제라서-_-;;

여튼 혹시나 했던 것이지만 진짜 사건으로, 그것도 시간이 좀 지나서 터지니 제 3자에 가까운 입장이지만 많이 당황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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