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유태인이 혈통적 연관 없단 말 나오던데. by 앨런비

간단히 말해.







아슈케나짐이든 셰파르딤이든 뭐든 유태인 유전연구결과는 걍 레반트계.

도리어 이렇게 안섞일 수 있냐 어이가 없을 정도로 현지 혈통이 안섞인 편. 

유럽혈통이 한 10%인가 섞였나 아마?

물론 그중에 레반트계인게 안드러나는 유태인도 있긴 하지만.



에티오피아 유태인이라던가(....)

에티오피아 유태인은 그냥 에티오피아애들과 거의 같은 혈통. 


단 모계의 경우는 현지혈통이 은근 많이 드러나는 축임.

터키에서 한국으로 이어지는 유사역사학 계보랄까. by 앨런비

확정은 아니지만 확증이 거의 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음.



투라니즘 발생은 타타르 애들 정신승리+핀란드의 우랄-알타이어족설+오스만과 헝가리의 열폭.

러일전쟁 때 오스만 애들은 일본이 이긴 것으로 헑헑하고 일본을 투란동지로 생각.

핀란드 애들도 러시아 통치하니 ㅆㅂㅆㅂ해서 일본에 나름 헑헑.

그리고 우랄-알타이어족설을 주장하는 핀란드의 람스테트가 주일대사로 근무해서 투라니즘+우랄-알타이어족설 꺼낸 듯.

1차대전으로 오스만에선 오토마니즘이 완벽히 소멸하고 투라니즘으로 대체.

그 부작용중 하나가 아르메니아 대학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터키 공화국 건국하고 서구화 개혁 및 오스만을 부정하기 위한 투라니즘 진흥.

아예 목표를 지정한 어용역사학으로 대진흥.

한편 일본에선 우랄-알타이어족설 및 헝가리-터키 경로로 투라니즘이 들어와서 만선-만몽 사학을 만들기 위한 논리로 사용.

일본에서는 투란민족동맹, 일본투란협회 등이 만들어지고 이것이 상당히 널리 퍼진듯.

그것을 기반으로 조선과 일본이 한민족이고 추가로 만주 몽골 및 핀란드 헝가리 튀르크까지 투란이라는 논리로 발전.

즉 투란VS비투란의 전쟁이자 일본은 투란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투란을 이끌어야 한다는 논리로.

그것이 한국 환빠의 시조중 하나인 최동이 흑룡회를 통해 입수한 듯 하고.

그대로 한국의 유사역사학으로.

그런데 최동이 흑룡회에 가던 시점에 터키의 어용 유사역사학이 사실상 만개하던 시점이고, 일본에 투라니즘 단체가 있어서 전해졌을 개연성이 높음.

분명 어느정도는 물든게 맞는 듯 하고.

여기서 남은것은?

아타튀르크의 어용 유사역사학이 일본에 그대로 전해졌는가 그것만 확인하면 끝.

허나 지금 나오는 것은 케말 파샤가 한국 유사역사학의 대부란 것은 기정사실화 직전 수준임. 




요약을 도식화 하면


헝가리+핀란드+오스만에서 투라니즘 발생->러일전쟁과 1차대전->투라니즘의 일본전파 및 터키정부의 어용 유사역사학 진흥->투라니즘을 통한 일본의 만몽론 및 일선동조론->한국의 유사역사학.


이렇게임. 

유사역사학의 대부 케말 파샤. by 앨런비

300의 이란측 비평으로 유명한 Kaveh Farrokh 박사의 '아제르바이잔을 향한 판-투라니즘 - 지정학적 아젠다'에서 필요부분 발췌번역임.


해당글은 http://www.rozanehmagazine.com/NoveDec05/aazariINDEX.HTML 에서 볼 수 있음.




범-투라니즘은 무엇입니까? 간단하게 말해 범-투라니즘은 유럽의 발칸에서 이란, 카프카스, 중앙아시아로 이어지는 초-튀르크 국가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이 논리에는 튀르크어를 말하는 모든 사람이 초-튀르크 국가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헝가리의 범-투라니즘 운동가들은 더 멀리 나아갑니다. 그들은 유럽의 헝가리와 노르웨이 사이에서 한국과 일본까지 투라니아라는 제국을 제안했습니다. 비전문 웹사이트를 제외하고는, 언어적, 인류학적, 고고학적 증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범-투라니즘 인종주의자와 역사가들은 다른 면에 구걸중입니다. 그들은 굳건한 증거와 논리적 실증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은 인종차별적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범-투란니즘은 나치와 같은 '인종학', 혹은 스탈린주의자들의 '역사'처럼 서방의 주류 학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했고, 헝가리와 아제르바이잔을 제외한 동유럽에서도 똑같이 실패하였습니다. 

범-투라니즘의 많은 점들은 범-게르만 인종주의와 나치와 유사합니다. 회색늑대와 범-투라니즘의 이데올로기들이 그들이 영향을 많이 받은 철학입니다. 나치처럼 30~40년대에 범-투라니즘 튀르크인들은 튀르크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레벤스라움과 같은 초-튀르크 국가를 그렸습니다. 최근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대통령인 아부파클 엘치베이는 스스로 회색늑대에 동감한다고 하면서 "타브리즈를 커쳐 투르키스탄으로 가는 길"에 대하여 언급했습니다. 타브리즈는 수천년간 페르시아의 일부였습니다. 



(1) 범-투라니즘의 기원에 관한 간략한 설명. 



범-투라니즘은 아마도 19세기의 마지막 인종운동중 하나일 것입니다. 전통적 역사는 1870년대 독일 제국에서 공부하던 인텔리겐차와 오스만의 관료들에게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서술합니다. 많은 오스만 튀르크의 관료들이 '터키'에 대한 인식을깨닫고 있었던 것은 의심할 나위 없으며, 지캬 고칼프와 같은 후속 민족주의자들의 역할은 역사적으로 완전히 확립되었습니다. 

덜 알려진 것은 투르크의 지정학적 이득을 위하여 일하는 외국인들의 역할입니다. 투란 제국이 오스만 튀르크인들에게서 유래되지 않으며, 유럽 혈통의 사람들이 많든 것은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그는 1857~1863년 오스만 술탄의 고문으로 일한 헝가리의 교수이자 언어학자이자 여행가인 아르니무스 밤베리였습니다. 

밤베리는 영국 외무부의 팔머스턴경이 고용한 사람입니다. 그가 술탄의 정부에 있을 때 범-투란 초국가라는 허구에 대하여 언급햇습니다. 

"튀르크는 동아시아의 알타이 산맥에서 보스포러스 해협에 이르기까지 정치체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밤베리의 테제는 중앙아시아인들이 페르시아어를 쓰는 타지키스탄을 제외하고 튀르크어를 사용하기 떄문에 투란의 형성이 필요하다는 관찰에 근거했습니다. 밤베리의 미션은 그레이트 게임에서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한 영국의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역할을 위해 반-슬라브의 인종주의 운동을 만드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밤베리는 1865~1905년 부다페스트 동방언어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는 터키, 아르메니아,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여행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했습니다. 언어와 민속학에 대한 그의 전문지식은 영국외무부를 지원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의 인종주의적 아이디어는 이후 터키인들의 유럽식 조작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범-투라니즘이 만들어진 계기처럼 영국정보기관은 많은 민족주의자들을 움직여 오스만 제국을 붕괴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영제국은 1차대전 10년 전부터 터키의 석유를 사용하고 싶여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걸프만에서 영국의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우위를 투영하는 장애물중 하나였고, 그 다른 하나는 페르시아, 지금의 이란이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아킬레스건은 다종족국가라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알려진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공작 외에, 영국이 지원한 초기 알바니아 민족운동과 불가리아 민족운동은 잘 알려지지 않앗습니다. 쿠르드 또한 동원되어, 1905년에는 런던에 쿠르디스탄 지도가 나타났습니다. 오늘날에도 터키 당국자들은 쿠르드 분리주의에서 영국의 공작을 의심중입니다. 

흥미롭게도 아르메니아인과 아시리아인들 또한 독립을 약속받았으나, 오스만의 쿠르드인과 그 주장이 겹쳤으며, 이러한 사실은 결과적으로 전쟁 이후 유혈사태와 비극에 기여하게 되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한가지는 이탈리아 국적의 임마누엘 카라소의 역할입니다. 카라소는 터키의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테살로니카에서 청년 튀르크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카라소는 마케토니아 부활이라는 또 다른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습니다. 많은 세부사항이 기밀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청년 튀르크 운동과 마케도니아 부활 운동에 영국 정보기관이 연루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 상황에 대한 정황정보가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청년 튀르크와 마케도니아 부활 프로젝트를 만드는데 있어서 유럽의 역할은 확실합니다. 마케도니아 부활과 이후의 대 아제르바이잔 운동 사이에는 놀라운 유사점이 있습니다. 

카라소가 단순한 하위직 공무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청년 튀르크 운동에 대한 그의 글은 결정적이었습니다. 술탄 압둘 하미드가 폐위당한 것을 알리고 가택연금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카라소였습니다. 청년 튀르크 자체가 전복다안 이후에도 카라소는 중요한 위치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1차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식량분배 네트워크를 담당했습니다. 카라소는 또한 발칸에서 오스만의 발칸 정보국의 운영을 도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블라디미르 야콥스키는 청년 튀르크 신문의 편집자가 되었습니다. 야콥스키는 이탈리아에서 교육받았으며, 과장된 추정에도 불구하고 외국 정보기관들과의 연관성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청년 튀르크 신문의 내용은 야콥 칸이라는 네덜란드 인이 감독하였습니다. 칸은 네덜란드 정부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의 왕과 왕비의 개인 은행업무를 담당했습니다. 다른 청년 튀르크의 신문인 터키인의 고향의 경제란 편집자인 알렉산터 헬판드 바르부스는 러시아와 영국의 이중요원으로 유명합니다. 발칸 전쟁중 튀르크군에 입수된 파브부스에 대한 추정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터키에 대하여 폭넓게,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한적인 학자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대전의 여국 정보국장인 존 버컨은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썼습니다. 부컨은 오브리 허버트가 전체작업의 핵심인임을 확인했습니다. 오브리 허버트는 갈리폴리 전투에 참전하면서 터키인과 아랍인 모두에게 유명해졌습니다. 아랍 반란을 선동한 T.E.로렌스는 이스탄불에서 청년 튀르크 운동의 부상을 돕는 허버트의 공모에 대하여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범-투라니즘의 일부 믿음.  


다른 인종주의처럼 범-투라니즘은 그들의 역사적 나르시즘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범-투라니즘이 만든 역사는 놀라운 것만이 아닌 엔터테이닝이었습니다. 범-투라니즘의 학자들은 세계역사의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말했을 뿐만 아니라, 언어학, 고고학, 인류학 등에서 새로운 국경을 설치했습니다. 이것은 나치독일의 아리아 물리학과 유사합니다. 

아래는 이러한 믿음에 대한 설명입니다. 아래의 서술을 읽으면서 당신은 분명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하고 어떻게 이러한 생각을 했죠?


(a) 문화와 언어와 문명의 건설자는 튀르크다.

범-투라니즘 이데올로기는 과거사를 새로 만드는데 최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이중 많은 부분은 "역사를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다" 라고 한, 터키 공화국의 창립자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기반으로 합니다. 


과거사의 재해석과 발명은 신생 터키공화국의 첫 십년간 활기를 띄고 시작했습니다. 이 교육목표는 1932년 앙카라에서 열린 제1차 역사회의로 이어졌습니다. 회의에 참가한 "역사학자"의 대다수는 역사학, 인류학, 고고학, 언어학을 대학 등에서 정규적으로 이수하지 않고 단지 정치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터키 역사연구회는 공화인민당과 연관된 것은 주목할만합니다. 

그리고 터키정부는 역사와 언어를 연구하는 다수의 단체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들의 사명은 범-투라니즘 이데올로기로 역사적 내러티브와 언어검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한 노력은 앞서 언급한 터키 역사 학회에 의해 추진되어 "터키 역사 테제와 태양어 이론"을 창안했습니다. 

테제는 세가지 기본 이데올로기적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씁니다. 

(a1) 유럽적인 국가 건설 - 터키는 서유럽 국가가 되어야 한다. 

(a2) 민족과 국가정체성의 기초로써 이슬람을 부정할 것. 이것은 더 유럽적인 부분입니다. 이것은 유럽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항하기 유럽보다 인종적 문화적으로 우월한 중동의 오리엔탈(튀르크, 페르시아, 아랍 등)을 내세우기 위한 필요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 

(a3) 튀르크는 거의 모든 문명의 후예여야 합니다. 

마지막 목표는 수메르, 히타이트, 이집트, 페르시아와 같은 과거 모든 위대한 문명이 튀르크가 설립하거나 터키인이 만든 것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인도, 중국, 폴리네시아, 페르시아, 유럽 전체, 중동, 극동 및 아프리카에 모든 주요문명에 중심에 위치한 튀르크를 보여주는 아래 지도를 참고하십시오.


알래스카의 베링해협을 향한 이동을 보여주는 화살표를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튀르크인이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임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서북유럽의 노르딕 인종이 설립한 위대한 아리아 제국에 속한 페르시아, 그리스, 인도, 로마라는 개념의 노르딕시즘과 같습니다. 이 논평에서 반복적으로 볼 수 있듯이, 파지즘과 나치즘으로 이어진 노르딕시즘과 범-투란주의는 일정부분 이데올로기적 유사성을 공유합니다. 페르시아 쇼비니즘과 많은 네오나치 운동은 네오나치 스타일 파시즘에 영감을 받았습니다. 

튀르크중심주의 역사 수정론에 의한 표준 교과서는 실라히 디케르 교수의 책 864 페이지의 "그리고 전 세계는 한 언어였으며, 1만년의 튀르크다"입니다. 그의 이론을 반박에서 그 교수의 반응은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의 모든 연구는 "편견", 편향, "반터키"였습니다."




뭐 이정도만 하고 

그 이후 

수메르는 터키다. 

고대 그리스와 아나톨리아는 터키다. 

에트루리아인은 튀르크다.

아르메니아인은 튀르크다.

북미 인디언은 튀르크다.

쿠르드와 메디아는 튀르크다.

타지크는 튀르크다.

터키는 페르시아 문학의 보고다.

유대-기독교와 이슬람교는 터키다.

북부 이란인은 터키다.

파르티아는 튀르크다.

보스니아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우크라이나인은 터키다.



뭐 이런게 이어지는데 저걸 다 번역할려다가 이정도 분량에 지쳐 포기.



자 소감은?



난 이런 생각임.




아무리 이슬람이 싫어도 이딴것으로 대체하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이러한 점 때문에 케말 파샤는 한국 환뽕의 대부로 매우매우 의심스러운 인물임-_-





PS.투라니즘의 배경설명은 난 그런갑다 하고 너무 음모론적이지 않냐 생각했지만 그레이트 게임 말기는 잘 몰라서 통번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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