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인구감소에 관한 잡설. by 앨런비

조선의 인구감소는 결국 세가지 입니다.

임진왜란, 양 호란, 경신대기근이죠.

여기서 잡설을 풀어보겠습니다.


1.임진왜란.

임진왜란 직전의 조선인구는 1000~1200만 추정입니다. 개인적으론 1200만에 기울어져 있죠.

..그리고 인구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단 기록에 남은 전사자와 학살을 대략적으로만 합해도 50만은 넘어갈 듯 하고, 실질적으로는 백만 이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592~1594년까지 이어진 흉년으로 역시 최소 백만 이상 인구감소가 예상되는군요.;

그나마 명의 구휼미로 어떻게든 버티긴 했지만 3년 연속 대흉년이라는 상황을 보면 백만도 높게 잡은 것이 아니죠.

여기에 전염병까지 겹치니 50만명 정도로 잡고, 포로는 10~20만명정도. 

포로의 경우 사료를 통해 역산을 거쳐 나온 최대 수치가 20만 정도입니다. 

결론적으로 전 '최소' 200만 이상의 인구감소를 겪지 않았냐고 봅니다.

실질적으로는 300만이나 그 이상의 감소로 보고 있고요;;

어쩌면 인구가 반토막 났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2.양 호란.

양 호란의 경우는 정유재란 당시 포로가 만여명으로 추정이고 문제는 병자호란이죠.

병자호란의 포로는 50만 정도라고 각 문집이나 일기등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를 저는 전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봅니다.

병자호란에서 타격을 입은 지역은 평안도-황해도-경기도인데 여기서 포로만 50~60만명이라면 일단 행정이 붕괴됩니다-_-;;

그런데 행정의 붕괴로까지 이어지는 기록을 개인적으로 본 적은 없는듯 하군요.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론 임진왜란의 추정 포로인 10~20만을 대입하는 것이 맞지 않냐고 봅니다.

병자호란때 포로 싹쓸이가 임진왜란-정유재란때보다 많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보니까요.

오히려 훨신 적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10만정도의 포로로 보는게 맞지 않냐 합니다.

그외의 타격은 전쟁기간이 짧으니 임진왜란에 비해서 그리 클 것 같지는 않아 보이고요.


3.경신대기근.

..말이 이미 많이 나왔으니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백만 전후의 인구감소로 추정.

전근대 흉년-전염병 크리로 인구타격의 상황을 보면 흑사병같이 걸리면 일단 죽는다는 정도가 아니라면.

인구 10%를 넘기기가 의외로 힘듭니다.

대신 인구이동으로 행정망이 붕괴되는 경우가 다반사죠.

그런 면에서 사실상 기록에 나온 백만이 맞지 않나 합니다.




그런 고로 인구 증감을 하면

임란 직전 1000~1200만으로 추정이고, 1200만일 가능성 높음.

임란 이후 500~1000만. 대략 600~800만으로 감소했을 가능성 높음.

병자호란 전후 인구증감은 의외로 적을 가능성 높음. 대략 700~900만 추정.

경신대기근 이전 인구 800~1100만. 

경신대기근 이후 700~1000만.

대략 이정도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인구감소가 멈추고 다시 인구증가를 하는 것입죠.

덧글

  • Jes 2011/09/24 18:12 # 답글

    그럼 호란 이후의 여러 사서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5-60만은 뭐 때문으로 봄?
  • 앨런비 2011/09/24 18:13 #

    배끼고 배끼고의 산물이 아닐가 보고 있는.
  • dsdr 2011/09/24 18:32 # 삭제 답글

    그래서 뭐 어쩌라고?
    뭐 뭐 뭐?
  • 앨런비 2011/09/24 18:32 #

    옛다 관심.
  • 2011/09/25 01:12 # 삭제

    어디서 환빠스멜이 킁킁
  • 백범 2011/09/24 19:21 # 답글

    그 대신 일본인들이나 유목민족이 뿌린 씨들이 "대신" 잘 자라지 않았을지... '대신' 말입니다. ㅋㅋㅋㅋㅋ

    사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인 1592~57년에 출생한 출생자들이면 병자호란이 터질 때쯤이면 30세 전후의 나이였을 것입니다.
  • 앨런비 2011/09/24 19:22 #

    옛다 관심.
  • 로가디아 2011/09/24 20:19 # 삭제

    씨를 얼마나뿌렷을까요?
  • 보헤미오 2011/09/24 20:36 # 답글

    갑자기 든 의문인데, 빅토리아 라는 게임에서는 1836년 조선의 인구를 1200만으로 잠고 있던데,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건가요???
    빅토리아2에서는 900만으로 잡고 있는데 이것도 영...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요...
  • 앨런비 2011/09/24 20:47 #

    그즈음이라면 1500~1800만이 맞을걸요; 19세기 인구증가율에서 논의가 일치하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 보헤미오 2011/09/24 22:11 #

    최소로 잡아도 1500만이군요;;; 이렇게만 잡아도 조선의 문명화 달성이 그렇게 어렵진 않을 텐데;;;
  • 앨런비 2011/09/24 23:21 #

    ㄲㄲㄲㄲㄲㄲ
  • Real 2011/09/24 20:57 # 답글

    조선초기에 비해서 증가한 인구비율치고 임진왜란 직전이 많다고 봐야하는건가요? 적다고 봐야하는건가요?
  • 앨런비 2011/09/24 23:21 #

    무지 많다고 해야겠죠.
  • 백범 2011/09/24 21:16 # 답글

    오오미 앨Q양반.

    난 앨Q씨한테 관심 받고 싶은 마음 죽어도 없당께...
  • 천범 2011/09/24 22:36 # 삭제

    옛다 관심
  • 앨런비 2011/09/24 23:21 #

    근데 여기 왜옴 ;ㅅ;?
  • 사과향기 2011/09/25 00:18 # 답글

    임난직전 천만이상? 글쎄요... 근거가 무엇인지?
    조선총독부가 1911년 조사한건 대략 1400만 정도인데...
    17~19세기에 농업기술발전에 따른 농업생산량이 증가된 것을 감안하면
    글쎄요???
  • 코쟁이 2011/09/25 01:19 #

    총독부도 자기들이 파악한 인구수치는 1920년 정도는 돼야 실제에 근접해진다고 파악하고 있습니다.

    1910년 처음 조사할때 1300만 정도 되던 게 1920년에 1700만이 넘지요.
  • 사과향기 2011/09/25 11:42 # 답글

    조선총독부가 근대적 인구조사를 처음으로 했던 1925년에 1900만이라고 합니다. 1920년에 1700만을 받아들이면 5년 사이 200만 증가,
    1911~1920 년 9년 사이 300만증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 시절에는 근대적 의학의 보급이 확대되고 농업 기타 산업 변화가 있었던 시기라 인구증가요인은 충분히 된다고 보입니다만 그러나 임란직전 천만이상이면 문제는 첫째 17~19세기의 농업발전에 따른 생산량증가... 이것은 뭐냐는 겁니다. 그리고 둘째는 세계인구는 1650년 경 약 5억, 1800년 전후해서 10억 그리고 1927년에 20억이 되었다고 합니다. 인구증가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지만 전세계적으로 4배증가하고 중국, 일본도 동기간 수배가 증가하는 동안 1천만~1천2백만이 1천9백만(1925년)해서 1.6~1.9배증가... 그나마도 일제 지배기간을 제외하면 더 작아지니 이 부분이 이상하다는 겁니다.
  • 앨런비 2011/09/25 13:39 #

    인구자체야 급증과 급감을 반복하는 것이니 세계 인구증가율을 굳이 따질 필요는 없는데 19세기는 포기한 이유는 말했다시피 제가 뭐라고 말을 하기에 학설이 난무해요. 다만 그중 그나마 일리있는 정도가 1800년경 1500~1800만 사이라는 것인데, 19세기 전반 세도정치기에 인구가 감소했냐, 정체했냐, 개화기 이후 인구가 정체했냐, 증가했냐, 이게 아직 답이 안나오니 내비두는 것이죠. 그래서 이 시기는 걍 믿고 싶은대로 믿으면 됩니다. 중국과 일본은 그전 전쟁등으로 인구가 많이 줄어서 다시 채우는 것이니 당연히 말이 되죠.
  • 앨런비 2011/09/25 13:42 #

    글고 말씀하신 인구증가율은 대략 3%이상의 수치라는 것인데. 이건 이시대엔 게임에나 나올 수치입니다. 인구증가율이 근 3%를 돌파해야 가능한 수치입니다.
  • 사과향기 2011/09/25 14:10 #

    인구증가율에서 좀 높은 것 같습니다만 1925~1944년 사이 인구통계를 참고하시면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일본, 중국의 경우 말씀하셨는데 중국의 경우 명청교체기, 태평천국사건등의 대규모 인명손실을 감안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에도막부성립, 명치유신 그리고 내전등이 있었으나 인구에는 영향을 줄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전에 앨런비님과 동남아 벼 생산량에 대해서 얘기한 기억이 나는데 요근래 생산량이 급증하는 것을 확인하셨을 겁니다.
    이런 현상이 조선후기에 일어났다고 보여지는데 과연 이게 인구와의 관계를 연결시키면... 과연 임란진적에 천만이란 숫자가 가능한지 의문이란 것입니다.

    제가 조선총독부 자료를 제시하는 것은 조선시대에 이뤄진 인구통계를 활용함에 있어 이후 이뤄진 통계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어서입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인구조사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모두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어서 이를 가지고 뭐라 말하긴 그렇습니다. 임란직후 천만이상이란 것은 조선시대의 인구통계의 문제를 지적하는 곳에서 그래서 그 시대의 인구통계에서 어느 정도 수치조정이 된 것으로 압니다만 그 수치조정에 대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 앨런비 2011/09/25 14:26 #

    중국의 경우는 태평천국으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것은 맞는데 일본의 메이지 유신 전쟁은 인구감소가 클 가능성은 낮아보이는군요. 오히려 인구증가를 더욱 야기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념해야할 점이 강건성세의 인구증가도 1%정도라는 것이죠. 2%를 넘는 인구증가율은 기본적으로 식량이 남아돈다는 전제하에 유아사망율도 갑자기 사라진다는 것 까지 필요합니다. 그런데 조선이 한일합방 직후에 그정도로 급속한 변화를 보였는가는 의문이라서요. 오히려 인구비율을 보면 일제시대 말기의 조선인구와 일본인구의 격차는 벌어집니다. 그 이유는 쌀의 유출이죠. 조선과 일본의 인구비율은 보통 2:3을 유지하는데 일제시대의 인구분포 변화는 조선이 일제시대에 급격한 인구증가를 했을까에 의문을 가지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조선전기는 그냥 추측일 뿐 답이 없습니다. 다만 따로 전쟁이 없었고, 조선 건국때까지 괴멸적인 인구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200년간 인구증가를 용이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죠. 그것도 다른 나라의 인구 추세와 신뢰성은 낮지만 일단 존재하는 조선의 인구조사의 변화추세를 보아서 결정할 뿐이죠. 그래서 추정이라고밖에 말을 못하는 것이고요. 일제시대의 1925년부터 인구조사는 당연히 존중합니다만, 일제시대가 시작되자마자 인구증가를 그정도로 급속하게 했다고 보기는 여러가지로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는 것이고요.
  • 사과향기 2011/09/25 15:43 # 답글

    조선/일본의 인구비가 2:3? 그건 현재 남북을 합쳤을 때를 기준으로 한 것 같은데요?
    조선은 1925년, 30년, 35년 40년 인구가 각각 1950, 2100, 2290, 2430만명,
    일본은 같은 기간의 인구가 5980, 6450, 6930, 7300만명입니다.
    인구증가율이 기간별 차이가 있지만 1925~1940년 기간 통틀어서 조선/일본이 대략 연1.4~1.5%정도입니다.
    님의 지적처럼 3%수준은 아니지만 1911년~1925년사이 갭에 대한 증가율이 2.3%는 높습니다.
    기존 통계방식과 근대적 통계방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란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으나
    영아사망율등은 근대의료보급이 확대되었다는것과 농업 기타 산업이 변화했다는 점에서 한 요인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http://en.wikipedia.org/wiki/File:Population_growth_rate_world_2011.svg 이것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을 보면 재밌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전쟁 중인 이라크, 아프간이 2%대이고 이디오피아는 3%대입니다. ㅎ

    아무튼 임란직전 천만 이상이란 것은 글쎄요... 조선시대 인구통계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외국의 사례를 비교해보고 또 조선후기에 있었던 농업기술발전을 고려했을 때 천만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 앨런비 2011/09/25 16:12 #

    2%의 인구증가율 누가 이상하다고 했습니까? 하지만 그게 갑자기 되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죠. 현대 인구증가율 저도 뻔히 압니다만, 합일합방 직후에 조선이 그정도 인구증가를 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것이죠. 한일합방을 하잠마자 1~2년만에 예방접종같은 위생 시작하고, 유아사망율 갑자기 없어지고, 식량 갑자기 폭증하고, 경기 갑자기 나아지고, 질병 갑자기 처리 가능하면야 한일합방 직후 25년까지 인구증가 말 되요. 근데 아무리봐도 그게 아니니까 문제라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1925년부터 1945년까지 인구증가를 봐도 그리 높지도 않으니 더더욱 의심스럽다는 것이고요. 차라리 그 때 인구증가율이 높으면 더 높아야하는데 그러니까요.

    조선전기는 그냥 상상하는 대로 하면 되요. 전 1000~1200만으로 생각한다는 것이지 남들에게 이건 강요할 문제 아니고 1000만 이하로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근데 그걸 왜 일제시대와 연결시킵니까?
  • 사과향기 2011/09/25 17:04 #

    어익후 죄종합니다. 너무 감정이 상하셨나보군요.
    일제와 연결된 것은 그나마 통계가 제대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 이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 글에 임란직전 1천만~1천2백만이라고 하는데 일제때의 통계와 조선후기 농업발전에 따른 인구증가요인을
    고려했을 때 의문이어서 근거가 정확히 무엇인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 앨런비 2011/09/25 17:10 #

    여기선 저도 정확히 답을 할 수는 없어요. 일단 조선시대 인구조사가 제각각인데다가, 사학자들이 인구 조사등 다른 분야에 워낙 약한 편이니 신뢰하기도 힘든 편이고요. 그래서 다른 시대,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자연스러운 것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인데, 19세기가 도대채 어이되는가를 현재 다들 모른다는 것이죠. 또한 임란직전 인구도 마찬가지고요. 다만 임란직전 인구가 그리 적었을까하는 생각은 자주 들죠. 그래서 임란직전 인구는 어느정도는 개인의 추정빨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만, 일본이 통일 이후 정리를 한 결과 인구폭발이 가능했고, 조선은 조선의 건국으로 안정을 누렸으니 임란직전이라면 인구격차가 상당히 좁혀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입니다.

    일제시대 인구조사는 당연히 기본입니다만, 일제시대가 되자마자 인구가 폭발했다고 보기는 힘든 면모니 말입니다. 그건 설명했다시피 1300->1900만의 증가는 사실상 그 때의 상황을 보면 불가능이라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고, 1900만에서 큰 차이가 안나는 것이 조선 멸망 직전 인구라는 것입니다. 다만 19세기 조선이 인구증가를 했는지 감소를 했는지, 유지를 햇는지 다들 의견이 엇갈립니다.

    조선후기의 인구증가 또한 마찬가지입죠. 거의 추정에 불과한 것인데, 결국 조선정부의 인구조사와 그당시 기록등을 이용해 추정하는 단게일 뿐이죠. 조선 후기 농업발달도 사학자들이 기록만 볼 뿐이지 그 방법을 시도하거나 직접 연구해서 어느정도 생산량 증가인가 보는 경우가 없다고 압니다. 그런 면에서 이것도 한계가 많죠.

    결론은 대충 추정일 뿐이고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말이 되는 정도까지만 보자. 이정도입니다.
  • 사과향기 2011/09/25 18:06 #

    1911년 1400만에서 1925년 1950만으로 증가한 부분에서 글쎄요... 2.3% 대신 1925~1940년 사이 증가율 1.4~1.5를 대입하면
    1911년에 1500~1600만 정도가 나옵니다.

    농업발전사 관련 서적을 보면 물공급문제로 이앙법 보급이 늦춰지다가 후기되어서 수리시설이 대폭늘어나고 이로 해서 이앙법이 확산, 정착됩니다. 그리고 시비법이 발전하게 되죠 이로 인한 증산은 현재 동남아의 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비료사용법의 개선으로 상당한 증산을 합니다. (이와 관련 링크는 전에 동남아 쌀생산량 얘기할 때 했습니다) 그리고 밭작물에서 견종법을 통해 파종되는 씨를 아끼면서 수확량이 수배이상 늘어납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는 기존 만전법에 비해 수확량이 5배라고 합니다. 또 고구마, 감자등 중요한 작물이 전래되기도 했습니다. 기타 종자개량, 개간등의 요인으로 조선후기에 농업생산량이 대폭 늘었습니다.

    그래서 의문을 제기했던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팔도지도등에 조선시대 인구기록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많아서 언급을 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전기에 안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인구가 증가했다 물론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양란이 지나고 조선후기 농업발전이 이뤄지는 시기는 어떤가요?
    그 시절에는 식량증산이라는 인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에서 변화가 있었는데 인구가 증가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전 바로 이점 때문에 임란직전 천만~천2백만은 무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살펴보아야할 것이 과연 조선시대 인구통계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구체적인 연구가 되지않은 상태에서
    막연하게 조세회피목적에서 인구가 축소되었다 그래서 그부분을 조정해야한다... 보통 그런 이유에서 배이상을 추정한다...
    배이상이라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벼농사와 같은 사례말이죠. 이상입니다. 혹시 감정 상하게 했다면 사과드립니다.
    한가지만 덧붙이면 그리 심각하게 다룰 내용은 아니고 전 그냥 좀 의문이 드는 것을 물어보고 답글에서 또 의문이 들었던 것 뿐입니다.



  • 앨런비 2011/09/25 18:23 #

    다시 추가로 답변을 드리자면, 개화기에 인구증가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말이 많이 나옵니다. 낙성대 쪽에서는 개화기때 증가를 했을 것이라는 쪽으로 하더군요. 저도 낙성대쪽에 기울어지긴 했는데, 19세기 전반 인구가 감소인지, 유지인지 그게 확실치가 않습니다. 19세기 초반의 상황을 보면 크게 증가했을 가능성은 없어보이는데, 그게 감소까지 이어졌을지 문제니까요. 고로 문제는 개화기인데, 개화기를 맞은 이후 경제상황이 호전되는 듯 합니다. 대신 곡물이 빠져나가는 부작용이 있죠. 또한 전염병의 치료도 근대기술로 한계는 있지만 본격화되기 시작하니 그게 일제시대가 왔다고 바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힘들어 보이는군요. 특히 곡물의 유출이 문제입니다. 그게 조선인의 자의건, 일본의 정책이건, 상거래의 결과든 조선의 곡물은 일본으로 꾸준히 유출됩니다. 그런 면에서 인구증가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경제적 요소인 식량생산이 인구폭발을 이룰 정도인가는 동의하기 힘들게 할 뿐이죠.

    특히 인구조사의 경우 초반의 10년정도는 믿을 수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인구조사를 10~20년정도 하면서 이제 완전한 인구를 조사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증가폭은 매우 가파릅니다. 다른 나라를 예로 들자면 미얀마는 1891년 750만에서 1901년 1050만이 나옵니다. 말도 안되는 증가율이죠. 하지만 그 이후는 증가폭이 안정화되는 것을 볼 수 있고, 조선도 마찬가지로 봐야 합니다. 특히 일제시대 초반에 인구가 갑자기 폭발할 요소는 특별히 안보이니까요. 개화기보다 좀 더 구조조정을 한다고 갑자기 인구가 는다는 것은 좀 이상하죠. 효과가 좀 더 있다 나타난다면 모르겠지만요. 그래서 한일합방 당시는 어이하든 1700만정도로 거의 추정하는 듯 합니다. 그게 일제시대 인구증가를 보면 타당한 설명으로 보이고요.

    조선전기는 수도 없이 말했지만 결국 추정입니다. 그리고 조선후기의 경우는 일단 양전부터 확실하게 계산이 힘듭니다만 조선전기보다 대폭 증가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조선전기 양전의 최고선이 170만결, 후기가 140만결 전후 고정입니다. 물론 조선후기는 양전을 할 때 일부로 등급을 낮춰주고, 양전용 자를 조금 크게 해주는 방식을 쓰긴 했지만 경상도의 일부 조사를 보면 농경지 증가가 20~30%정도까지만 추정되는 정도입죠. 그것도 일반화가 될 수가 없는 야기고요.

    농경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구증가는 다들 너무 큰 환상을 가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앙법을 쓴다고 갑자기 식량생산이 폭등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앙법은 농사를 지을 때 노동력을 감소시키는 방법이지, 그걸 한다고 갑자기 수확량이 폭증한다는 의미로 주목 받는 것이 아니니까요. 대신 이모작이 가능해지긴 한데, 그 이모작의 비율도 어느정도인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한편 한전의 경우에는 조선 전기 1기1작, 혹은 2기 3작에서 1기 2작의 형태로 바뀐 정도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ㄷ 유의할 점이, 횟수가 는다고 수확량이 배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겨울은 해가 짧고, 거름도 한계가 있습니다. 수확량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식이 농사의 횟수를 늘리는 것이지만 그것도 일반적인 생각처럼 두배 늘고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이죠.

    조선 후기 인구조사는 아주 간단한 사례를 알려드리죠. 인조 때의 인구가 한 150만명으로 나옵니다. 참고로 조선의 인구조사는 남녀 합해서에요. 그런데 같은 인조시기 호패 뿌립니다. 당연히 성인 남성에게만 뿌리는 것이죠. 근데 호패만 230만개 정도 뿌립니다. 결론은 심플하죠. 바로 인구가 폭증이다. 그런 고로 적당히 배수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조선의 인구조사입니다. 참고로 호패를 뿌릴 때 조사하지 못한 인원까지 하면 더 늘어날 수도 있고요.
  • 사과향기 2011/09/25 23:26 #

    동남아의 예는 농업기술발전에 따른 증산효과의 한 예로서 든 것입니다. 증가폭이 크다는 것 외에 기술적인 내용은 저도 잘은 모릅니다.
    중국의 경우 비료성분의 조정만으로 배이상의 증산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자료를 본지 꽤 되어서 기억이 가물합니다만. ㅎ

    우리나라의 경우를 살펴보면 모내기에서 벼베기 후 보리등을 심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이모작은 바로 이런 형태입니다.
    그냥 밭벼를 하거나 물논에 바로 파종하면 보리를 경작할 여유가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지력이 떨어지게 되는데
    바로 이래서 심경, 시비법이 중요하고 이 시기 발전, 보급되게 됩니다. 또 시비법이 발전하면서 휴경농업(농지를 쉬어가면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농지이용효율이 떨어집니다.)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위에도 얘기했지만 견종법을 통해서 종자를 절약하면서 노동력도 절약됩니다. 또 이를 통한 증산이 가능합니다. 대개 3~5배입니다. 또 감자, 고구마 같은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작물이 식량자원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이것이 이 시기에 전해집니다. 또 기술발전에 따라 절감된 노동력으로 해서 개간이 이뤄지는가 하면 광작이 나타나고 상업작물 재배가 본격화되며 이를 통해서 자본을 축적하기까지 합니다.

    인구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식량입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자연적으로 인구가 늘지 않습니다.
    예로 만주, 몽골의 유목민의 인구는 긴세월에 걸쳐서 크게 변동이 없었습니다.
    유목민에게 있어서 중요한 가축들의 숫자는 날씨에 따른 목초의 생육상황에 영향을 받는데 장기간으로 보면 크게 변화가 없는 탓에
    가축수의 변동을 기대하기 힘든 탓입니다.

    그러나 농업지역의 경우는 종자개량을 포함한 농업기술발전, 개간으로 농업생산력이 늘어나면 그에 부응해서
    인구가 증가하는 것입니다. 즉 17~19세기 사이의 농업발전으로 인한 인구증가요인이 감안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임란직전 그 정도의 인구에서 양란감소는 오래지 않아 회복된 인구에서 다시 농업발전에 따른 인구증가를 감안하게 되면... 글쎄요.

    1911년 1400만이란 것에 대해서는 조선총독부 자료이니 제가 뭐라 하긴 뭐합니다.
    1925년 자료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뒤에 1.4~1.5%증가에 비해서 1911년~1925년 2.3%는 좀 이상하다면
    다시 1.4~1.5%를 고려한 수정수치 1500~1600만인데 글쎄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임란직전 천만~천2백만이라고 얘기한 것에 대한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했던 것이고,
    이제는 글쎄 어떤 이유에서 그런 수치가 사용되었는지 알겠습니다.
  • 앨런비 2011/09/26 01:35 #

    일단 기록에 나온 견종법 5배의 수확은 특수상황에 과장법이 섞였을 가능성이 극히 높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느 작물이든 이랑이 하는 것이 좋은 작물도 있고 고랑에 하는게 좋은 작물도 있습니다. 그런 고로 그리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견종법이 만능이 아니고요. 그것도 계절에 맞춰서 해야하는데 그걸 그리 신경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군요.

    애초에 농경을 잘 모르시는 듯 한데 기술 하나에 갑자기 뻥튀기 되고, 이모작이면 두배되고 하는 것이 농경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조선전기와 후기의 식사량도 다르고요. 그런고로 기록에 어느정도 과장을 생각하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요.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는 못느끼는군요.

    신작물인 감자와 고구마는 기본적으로 구황작물입니다. 아니면 텃밭에서 하고요. 산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인데,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들어온 시기도 생각보다 매우 늦습니다.

    임진왜란 직전의 인구는 사학계에서 보통 800~1400만으로 추정중입니다. 조선건국 이후 경지가 급속도로 증가하걸랑요. 고려말과 조선 건국 이후 농경지는 2배로 증가합니다. 그리고 농경지 면적은 변화가 없죠. 이건 그냥 추정이니 저에게 계속 따지는 것도 뭐합니다. 저도 구체적으로 계산해서 하기는 힘들어요. 다만 증가율등을 보고 어림짐작으로 잡을 수 밖에 없다고 수도 없이 말한 듯 하군요.

    일제시대 문제도 여러번 말했습니다만. 그리고 인구증가율 2.5%가 아주 간단하게 보이는 모양이군요. 1.5%도 미친듯한 인구성장율입니다. 2%이상은 거의 특수상황이고요. 그것도 여러번 설명드렸죠. 현대사회 개발도상국의 일제시대 초기를 대입하는 것부터 무리입니다. 그걸 더이상 설명하기도 귀찮고요.
  • 앨런비 2011/09/26 01:51 #

    리플 달기가 힘드니 밑에 새로 달죠.
  • ㅇㅇㅇㅇ 2011/09/25 22:21 # 삭제 답글

    황국신민 이급에서 일급이되는 방법은?
  • 앨런비 2011/09/26 02:04 # 답글

    감자의 전래 19세기 초입니다. 고구마는 좀 더 빨라서1763년입니다만, 그게 인구증가에 영향을 크게 끼칠 정도로 빠른 전래는 아닙니다. 퍼지는데 걸리는 시간도 감안해야하고, 이 두 작물은 기본적으로 구황작물입니다. 어느정도 경작면적 증가에 기여할 수 있지만 부카니스탄처럼 미친듯이 심는 것이 아니라면야 힘들죠. 그리고 전래시기도 매우 늦은 편이라 퍼지는데 걸리는 시간도 감안해야하고요.

    견종법은 기본적으로 겨울작물에 맞는 농법입니다. 그리고 겨울작물은 낮이 짧아서 그 효율도 떨어져요. 또한 조선시대 농업생산기록은 과장이 심해서 곧이고대로 받아들이기가 곤란하고요. 그것은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5배라는 효율도 과장법에 특수한 상황이라고 밖에 보이질 않는 것이죠. 좀 더 예를 들자면 중국 농법에 나온 수확량을 곧이 고대로 믿으면 강남지방의 수확량은 지금과 비슷하거나 더 많게도 나옵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가 매우 곤란하다는 것이죠.

    또한 조선은 청이나 일본과 다르게 이미 개간할 곳은 다 개간한 상황입니다. 일본의 경우 전국시대의 종결로 일명 경계선이 있는 땅이나 여러 번을 흐르는 강을 치수할 수 있어서 엄청난 인구증가를 할 수가 있었고, 청의 경우는 강남과 사천의 개발이 있습니다. 특히 청은 명말청초에 엄청난 학살이 있었던지라 더하고요. 또한 옥수수, 감자, 고구마의 전래도 훨신 더 빨랐습니다. 여기에 광동을 중심으로 동남아에서 대량의 식량도 수입했죠. 특히 식량수입은 19세기의 인구증가에 상당한 요인이라고 봐야합니다. 동남아의 쌀을 쓸어담는 블랙홀이 중국이었걸랑요. 그런데 조선은 식량 수입도 아니고, 개간할 것은 다 했으니 결국 기술에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런데 기술의 경우는 너무나도 환상을 많이 가진 분들의 생각과는 달리 팍팍 증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나마 가장 증가하는 것이 이모작, 이기작인데 겨울작물은 말했다시피 효율이 떨어져요. 그리고 겨울이 사실상 없다는 중국 남부와 동남아쪽도 이모작의 수확량은 제가 알기로 1.3~1.4배밖에 안됩니다. 즉 환상이란 것이죠. 그것을 감안하면 1200~1800만까지 증가가 그리 이상한 것인지 의문이군요.

    다만 제 인구추산도 약점이 있어서 임란직전 인구를 1200만으로 보지만서도 더 적을 가능성을 분명 감수하고 있습니다만 조선 후기 인구는 어이하든 1500~1800만정도의 결론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건 농업발달정도로 봐도 큰 무리가 없는 정도고요. 일본이나 청처럼 경작지가 대폭 증가하고, 신작물이 빨리 보급되었다면 몰라, 조선은 그게 아니걸랑요. 그리고 신작물중 감자나 고구마는 조선에서는 대량생산보다는 구황작물에 가까운 성격일 수 밖에 없고요.

    그리고 인구증가율은 1.5~2.5%가 너무 만만하게 보이는 모양이군요. 그건 그냥 미친 인구증가율입니다. 애를 계속 나아대고 유아사망율이 무시할 정도로 쭈욱 떨어지고, 애들이 질병으로 잘 안죽고, 아사의 염려가 없을 경우에나 가능합니다. 전근대의 유아사망율은 50%. 그게 갑자기 0으로 떨어진다면야 가능할 수도 있는데 일제시대가 되었다고 갑자기 유아사망율이 0이 된다는 것은 완전 무리로밖에 보이질 않는군요. 거기에 조선은 식량 상당수가 일본으로 빠지던 상황입니다.
  • 사과향기 2011/09/26 10:09 # 답글

    2.3%는 일본의 사례를 봐서 좀 높은 것 같아서 1911년 1400만에서 1925년 이후 인구증가율 1.4%~1.5%를 역적용하면
    1911년에 1500~1600만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1911년 수치는 전환기라는 점이 감안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어떻게 해서 나온 수치인지에 대해서 알 수 없느니만큼 무조건 배제하기도 힘듭니다.
    그리고 앨런비님이 제시하는 1500~1800만 이란 수치는 어떻게 나온 것입니까?
    그리고 이디오피아나 기타 현재 아프리카의 사례는 어떻게 설명하실렵니까? 기아에 허덕이는데 말이죠?
    그리고 견종법은 밭이랑, 고랑을 내어서 작물을 심는 것입니다. 꼭 겨울작물에만 적용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를 통해 씨앗을 아끼고, 배수가 용이해지며 노동력 절감효과가 크다고 하며 이를 통해서 수배의,
    임원경제지에는 5배라는 수치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인력이 많지 않고, 농기계가 지금처럼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항상 인력부족에 시달렸습니다. 그리고 개간하면 이것이 지속적으로 관리되어야 하는데 인력이 충분치 못하면 곧 버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앙법, 견종법에서 절감된 노동력이 필요한 것이고 개간에 활용될 수 있었던 겁니다. 구황작물에 대해서 급격한 증가는 않았을겁니다. 새로운 작물이 정착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러나 지금도 그렇지만 강원도 같은 농사지를 땅이 적은 곳에서는
    중요한 작물이었고, 그외 지역에서도 배수문제만 신경쓰면 토질에 구애받지 않고 재배가능했고 단위면적당 생산량도 쌀에 버금갈 정도입니다.

    중국남부, 동남아의 이모작은 그냥 벼를 두번 심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이모작이란 벼, 보리를 교대로 심는 것입니다.
    그리고 농지를 휴경법처럼 쉬지 않고 이용하면 지력이 떨어져서 생산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퇴비, 비료사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1.6~1.7배가량 증산이 가능합니다. 이상입니다.
  • 앨런비 2011/09/26 11:19 #

    수도 없이 말했지만 농법 자체를 너무 모르시는군요. 견종법의 효과가 그리 좋으면 왜 지금 견종법으로 통일을 하지 않는지 그것부터 좀 알아보시길 바랍니다. 지금도 고랑과 이랑은 선택해서 농사짓걸랑요? 견종법은 주로 겨울에, 농종법은 주로 여름에요. 노동력 절감이든 뭐든 일단 개간할 동네는 다 개간한 곳이 조선입니다. 이앙법도 마찬가지에요. 개간할 동네는 다 개간한 상황이니 몇배의 증산은 꿈이에요. 또한 이앙법 자체가 노동력 절감으로 하는 것이지 생산량 증가는 별로 없어요. 그나마도 논은 이앙법을 한 이후에도 이모작의 비율도 그리 높지 않고요. 보리고개를 들고 싶으시다면야 조선의 한전이 수전의 2배였단 것만 알아도 땡이고요. 그리고 1.6~1.7배의 증산은 아예 생각이 없는 수치군요. 간단히 말해보죠. 지금 죽어라 비료 퍼붙고 하는 보리농사도 쌀농사와 대비해서 그정도의 효율이 안나오걸랑요? 밀농사가 겨우 그정도 나올랑말랑한데 조선은 밀농사 비율조차 낮아요. 수도 없이 말했지만 농사가 그냥 비료주고 기술 바꾸면 증산이 뿅뿅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누차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말하는 것도 지겨워요. 더 말하자면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친듯이 비료뿌리고 종자개량도 현대적으로 미친듯이 하고 농약 쳐넣고 해서 나온 결과가 쌀농사 효율 1.6배로 증가에요. 농경지 증가는 아예 강의 모양까지 바꾸면서 농사지을 수 없던 땅을 어거지로 농사 지은 결과고요. 진짜 기본적으로 농업기술을 알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리고 전환기 전환기 하는데 1%이상의 인구증가율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십니까? 전근대에서는 2%는 말 그대로 특수상황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수치이고 1%이상의 인구증가율은 여러 요소를 다 감안해야 겨우 나오는 수치입니다. 그리고 1500~1800만도 도대채 몇번이나 설명했습니까? 19세기 경제적 상황, 일본의 인구조사가 완비된 시점. 인구조사의 초반 문제를 설정해서 나온 것이라니까요? 제 3세계 현대 일부국가가 그렇게 일반적인 사례입니까? 문젠 현대의 막장국가도 전근대의 비참한 유아사망율이 나오지 않습니다. 전근대 유아사망율은 일단 반은 죽고 시작합니다. 여기에 성인이 될 때까지 사망을 더하면 그 이상 죽어나가는 것도 수두룩 합니다. 그게 갑자기 일제시대 되었다고 뿅 없어집니까? 그나마도 유아사망율을 없애려면 기본적인 행정이 갖춰줘야 하는데요? 그런데 그 행정이 갖춰진 것이 20년대죠. 그러면 애초에 선후가 안맞네요? 그럼 도대채 어쩌라는 것입니까? 인구증가율을 말하고 싶으면 현대국가를 말하지 말고 전근대 국가로 하세요. 현대국가의 인구증가율과 전근대국가의 인구증가율은 전적으로 독립해서 구분해야된답니다.
  • 원양항해 2019/04/23 18:56 # 삭제 답글

    일본은 배 타고 가야 하는데, 청은 걸어 가면 됩니다. 그러니 청이 더 잡아가기 쉬웠을 겁니다. 그러면 청이 더 많이 잡아갔을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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