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라트 4부족 연맹에 대한 잡담. by 앨런비


오이라트는 역사적인 중요성에 비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동네입니다. 끽해봐야 에쎈 타이시와 토목의 변 정도로 기억하고 끝나더군요. 물론 오이라트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토목의 변이긴 합니다만, 실제로 오이라트의 중요성은 그것 만이 아닙니다. 대원 울루스의 멸망 이후 몽골 본토의 칭기즈칸의 황금씨족을 약화시킨 장본인중 하나가 오이라트고, 최후의 유목제국을 건설한 것도 오이라트고, 그 범위도 생각외로 넓었죠. 여기서 상당수는 이런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최후의 유목제국? 잘 알지는 못하지만 준가르가 최후의 유목제국 아닌가? 그런데 반짝 나타났다가 강희제에게 쳐발리고 끝난 동네 아님? ...준가르가 오이라트의 일파인 초로스부를 중심으로 세워진 유목제국입니다-_-;; 강희제 때 멸망한 것도 아니고요-_-;;;


오이라트의 기원은 애매모호합니다. 그들의 위치는 알타이 산맥 북쪽 시베리아와 접경지역. 칭기즈칸이 몽골통일을 할 무렵에 겨우 산림을 탈출하여 유목생활을 시작할랑 말랑했던 부족으로 보입니다. 계통은 라시드 앗 딘의 집사에서는 몽골이라고 칭하게 된 튀르크족이라고 나오는데, 현재 언어적 계통으로는 몽골어의 방언, 친척 정도의 위치입니다. 즉 튀르크어와는 다른 것으로 보이는데, 라시드 앗 딘의 집사를 무시할 수도 없고, 하지만 언어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는 없는게 문제입니다만. 라시드 앗 딘의 집사에서 몽골이라고 칭하게 된 튀르크 부족에서 나오는 튀르크란 표현은 돌궐제국의 후예, 즉 괵튀르크의 의미가 좀 강해보이더군요. 그런 고로 이들은 몽골 계통의 민족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여튼 역사적으로 오이라트가 등장한 것은 칭기즈칸의 몽골통일 때야 되서입니다. 여기서는 최후의 적 나이만의 다얀 칸을 도와준 악역의 부하 A정도의 포지션을 보여줍니다만-_-; 그들은 칭기즈칸이 몽골제국을 성립한 1206년 이후 첫 정벌의 희생양이 됩니다. 칭기즈칸과 관련된 책에서 아주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는 몽골통일 이후에 시베리아 수렵민을 대상으로 한 주치의 첫 정벌이 오이라트걸랑요(...) 그들은 칭기즈칸에 항복한 후 칭기즈칸의 방식에 따라 4개의 투먼으로 조직됩니다. 이 4개의 투먼은 초로스, 토르구트, 도르베드, 코이드 라고 일단은 하면 될 것입니다. 이게 딱 맞는 것인가는 오이라트인 자신들부터 현재 학자들간의 키배가 있지만 그것까지 따지기는 귀찮으니 걍 위키피디아식으로 대신했고, 이들중 앞의 두 투먼인 초로스와 토르구트를 주목하길 바랍니다. 그들은 18세기 중반까지 이어지는 오이라트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활을 하기 때문이니까요.


오이라트의 위치는 나름 미묘했습니다. 그들은 칭기즈칸 때에는 겨우 시베리아에서 초원으로 나온 민족이었지만 하필이면 그 위치가 알타이 산맥 언저리인지라 몽골제국의 각 세력권이 중첩되면서 교역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먹어버린 것이죠. 이 때문에 쿠빌라이 때부터 일어난 몽골제국의 분열 때 서로 열심히 쌈질(...)을 하던 황금씨족들은 오이라트를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한 듯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대원 울루스의 반대편에서 주로 싸웠고, 깨지기도 하고 바르기도 하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그래도 이즈음은 나름 조용한 편이었습니다만, 대원 울루스가 망하면서 오이라트는 깽판을 치기 시작합니다. 


대원 울루스는 주원장의 명에게 멸망했다고 일반적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거처만 옮겼을 뿐 여전히 살아남..기는 했습니다. 다만 주로 쳐발리는 쪽이었을 뿐이지-_-;; 그래도 지네들이라도 잘했으면 모를까, 열심히 내분을 했습니다-_-;;; 칸은 수도 없이 바뀌어대고, 그 때문에 더 쳐발리고, 그러면서 막장 드라마를 찍고-_-;; 오이라트가 몽골과 싸우게 된 시점도 사실상 이 때 부터입니다. 1394년 북원의 엘벡 칸은 동생의 마누라를 뺏고, 그 마누라는 열받아서 칸의 신하에게 술을 퍼마시게 한 후 칸에게 쟈 쓰레기라고 쳐죽이라고 해서 칸은 그 신하를 진짜 쳐죽이고, 그 때문에 그 신하의 아들은 오이라트의 마흐무드와 동맹을 맺어 엘벡 칸을 살해합니다(...) 이렇게 막장 드라마를 찍고 오이라트는 몽골과의 기나긴 전쟁을 시작하죠. 


북원(이후 몽골로 통일)은 이런 막장 드라마를 찍고도 정신을 못차렸습니다. 칸은 수시로 바뀌니 굳이 언급할 필요도 못 느낍니다. 덕분에 명의 홍무제나 영락제는 열심히 몽골을 능욕할 수 있었고요. 오이라트도 이에 편승에 앞서 등장했던 마흐무드는 또 몽골의 칸을 죽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몽골을 능욕한 영락제는 크고 아름다운(...)것을 추구하는 그의 본성에 맞게 오이라트도 쳐바릅니다. 마흐무드등의 오이라트의 지도자는 사망. 대신하여 마흐무드의 아들인 토곤이 뒤를 잇습니다. 여기서 잠깐. 일부로 칸이 아닌 지도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익히 아실 분들도 많겠지만 칭기즈칸 이후 칸이라는 자리는 칭기즈칸의 황금씨족만 계승할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오이라트는 황금씨족의 후예가 아닌지라 칸이라는 명칭을 계속 사용하지 못합니다(...) 대신하여 많이 쓰는 것이 칸을 보좌하던 역인 타이시인데, 실제로 우리가 아는 에쎈도 에쎈 칸이 아닌 에쎈 타이시(...)


여튼 1416년 토곤이 타이시가 되어서 오이라트를 이끌게 됩니다. 그리고 마흐무드-토곤의 타이밍에 오이라트는 사실상 같이 뭉쳐서 몽골에 대항하게 되고 이들을 보통 오이라트 4부족 연합이라고 부릅니다. 이유는 당연히 4개 투먼이니까요. 그리고 그에 대항하던 몽골은 40개 투먼(...) 뭐 이즈음 되면 몽골의 40개 투먼은 실질적으로 6개 투먼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만-_-; 이런 관용적인 표현은 오랬동안 사용됩니다. 오이라트 4개 투먼, 몽골 40개 투먼, 합해서 44개 투먼. 여튼 다시 넘어가서, 이렇게 토곤 타이시가 오이라트를 안정화하고 있을 때 까지도 몽골은 정신을 못차립니다. 계속 막장 드라마를 찍습니다(...) 그 기회를 틈타 토곤 타이시는 1431년부터 몽골 정벌에 나서 1438년에 전몽골을 정복합니다. 이렇게 몽골 40개 투먼은 오이라트 4개 투먼에 정복당한 것이죠(...) 하지만 그래도 토곤은 칸은 못되고 1439년 죽습니다. 그 뒤를 이은 것이 에쎈 타이시죠.


에쎈 타이시는 뭐 말장사와 토목의 변 하나로도 재대로 된 깽판을 쳤다고 할 수 있겠죠. 토목의 변이야 워낙 유명하니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고요. 하지만 토목의 변 이외에도 에쎈 타이시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는 명목상 칸에 가까웠던 톡투 부카가 오이라트 마누라에게서 나은 자식에게 칸위를 넘기길 거부하고 반항을 하자 톡투 부카를 격파한 후, 칭기즈칸의 황금씨족중 오이라트 어머니에게 태어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살해한 후 1454년 스스로 칸위에 올랐습니다. 이것은 칭기즈칸 황금씨족만이 칸이 될 수 있다는 룰을 깨버린 것이고, 에쎈 '칸'의 제위는 단 1년만에 그가 부하에게 살해당함으로써 끝납니다. 이로써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오이라트 제국은 멸망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난다면 굳이 글을 쓸 이유도 없었겠죠(...) 오이라트 4부족 연합은 몽골과 300년이나 더 싸웁니다(...)


이후 오이라트와 몽골의 기록은 한동안 알아보기 힘듭니다-_-; 그래도 알 수 있는 것은 몽골에서는 근 40년간 또 막장드라마를 찍었다는 것과 오이라트는 자신들의 본거지로 빠꾸했다는 것이죠. 또한 이즈음에 오이라트는 예전의 나이만, 케레이트, 메르키트 계열의 부족을 흡수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설명한 오이라트 4부족 연합의 이름부터 이게 맞나 모르겠다는 것이고요(...) 말로는 4부족인데, 나중에 기록된 부족만 9개정도이니; 그런데 이건 몽골도 똑같았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몽골은 원래 40개 투먼이지만, 이 시기에 6개 투먼으로 재조직 되었습니다. 이것도 또 나뉘어서 좌익과 우익 3개 투먼씩으로요. 여전히 표현으로는 몽골 40개 투먼, 오이라트 4개 투먼이라고 하는데, 예전의 명칭과 새로운 명칭이 뒤섞여서 정신없는 시츄.; 뭐 어이하든 이렇게 좌우익으로 나뉘었던 몽골도 16세기 초에는 다시 통일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반쯤 막장과 반쯤 기사도틱(?)한 드라마를 찍으면서. 하지만 귀찮으니 또 생략.


한편 이 때 오이라트는 티무르 제국을 멸망시킨 우즈베크하고 열심히 싸우고, 일단 중국과 몽골쪽 기록상으로는 몽골에 쳐발리고 다녔다고는 합니다. 그런데 쳐발리고 다녔다면서, 정복당하고 본거지도 수시로 털렸다면서 16세기 중반 몽골의 알탄 칸의 제위 때까지 예전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을 지배하고 있었다니 이게 뭠미? 할 수 밖에 없고. 아무래도 여전히 강력한 세력을 지녔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네요. 다만 몽골의 알탄 칸의 제위기에는 오이라트도 몽골에 복속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공격으로 오이라트의 중심지가 알타이 산맥 인근에서 준가르 분지와 카자흐스탄 동부로 옮겨진 듯 하고요. 여튼 이렇게 오이라트와 몽골의 전쟁이 몽골의 승리..로 끝났으면 몽골에게도 좋았으려만-_-;; 오이라트는 곧 다시 독립합니다. 그리고 이전 오이라트 4부족 연합을 뛰어넘는 힘을 보여주게 되죠. 


재분열된 몽골에서 좌익 칼카부와 계속되는 항쟁을 하던 오이라트는 1623년 몽골 칼카부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하고 다시 독립을 합니다. 하지만 그 직후 무슨 내분으로 오이라트의 일원이었던 토르구트 투먼은 서쪽으로의 이주를 결정합니다. 이미 러시아와의 접촉으로 시비르 칸국이 멸망했고, 그로인한 공백지가 꽤나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 오이라트에게는 새로운 유목지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죠. 여기에 내분까지 일어난고로 1610년부터 토르구트부를 중심으로 한 상당수의 인원이 서쪽으로 이주합니다. 뭐 말로는 이주인데 그것이 평화적인 것이 아닐 뿐(...) 오이라트는 흑해-카스피해 사이의 지역으로 이주를 결정했는데 그 지역은 노가이 칸국의 근거지. 결과는 노가이 칸국의 관광입니다(...) 노가이 칸국은 오이라트군에게 쳐발린 후 일부는 러시아에 항복, 일부는 오이라트에 투항, 나머지는 크림 칸국으로 투항했습니다. 이 직후에 노가이 칸국이 코침 전투에 참전하고 그 이후에도 폴란드-리투아니아를 약탈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오이라트에게 쳐발리고 서쪽으로 이주한 후 살길이 힘드니 크림 칸국과 오스만의 빽을 믿고 열심히 약탈한 것으로 보입니다아-_-;;;


이렇게 러시아로 이주한 오이라트인을 러시아에서는 칼믹, 또는 칼묵이라고 불렀습니다. 수족의 명칭처럼 오이라트를 적대하던 민족들이 부르던 명칭이 굳어진 것이라고 하더군요. 오이라트 본토에서는 뭐라꼬라? ㅆㅂㄹㅁ라고 하지만 러시아에 이주한 토르구트부를 중심으로 한 오이라트인들은 아 우리? 라고 하면서 그 명칭을 받아들이고 스스로도 칼믹이라고 칭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주변의 카자흐, 노가이, 크림 등을 열심히 공격했고, 안그대로 노가이, 크림 타타르등과 싸워야 했던 러시아는 기존의 튀르크계 타타르 제민족들과 다른 이 몽골계 오이라트를 쓸만한 동맹자로 여깁니다. 이미 그 전부터 접촉은 해왔던 것도 있고요. 러시아는 이들을 그전부터 같이 싸운 코자크들과 비슷하게 대우하기로 합니다. 즉 지네들 주장으로는 복속, 하지만 실질적으론 자치이면서 전쟁시 기병을 공급받는 용도라는 것이죠. 이렇게 칼믹과 러시아의 동맹은 계속되었고, 칼믹은 러시아와 함께 오스만, 스웨덴과의 전쟁에 대항해 싸웁니다. 


한편 이 시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이라트가 칼카부를 격파하여 독립을 하고, 내분에 빠지고, 일부가 볼가 강변으로 이주할 무렵인 1620년대는 한창 후금이 세력을 키우던 때라는 것입죠-_-; 후금은 분열된 몽골을 지속적으로 공격했고 결국 내몽골 차하르부의 마지막 황금씨족의 계승자의 투항을 받아냅니다. 이것을 계기로 후금의 홍타이지는 칭기즈칸 황금씨족의 계승자로 몽골의 칸을 자칭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청으로 국호 변환, 즉 다이칭구룬의 성립이죠. 문제는 그 여파로 조선을 침공해서 인조가 삼배구고두를 하게 된 안습한 사건이 있습니다만-_- 여튼 패스. 이러한 청의 확장은 아직 점령되지 않은 외몽골의 칼카부에게 위기로 다가왔고 그 때까지 적이었던 오이라트와 화의를 하는 계기가 됩니다. 


1640년 몽골 40개 투먼과 오이라트 4개 투먼은 회맹을 열고 화의를 했습니다. 몽골사에서는 이민족의 침공을 막기위한 동족간의 화의니 뭐니 하고 꽤나 높게 평가하는 모양인데. 당시 몽골은 오이라트를 몽골의 일파가 아닌 다른 민족으로 보았으니 크게 오바고-_-; 오이라트나 몽골이나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져서 드디어 휴전을 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오이라트는 그 직전 내분을 겪어서 여러 부족들이 흩어졌고 몽골은 청의 위협을 바로 뒤에 두고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사실상 오이라트의 이익이 더 많았다고 보면 될 듯 한것이. 분명 오이라트의 본거지를 떠난 오이라트 제부족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오이라트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떨어져 나간 지방에서 확장을 계속했기 때문이죠. 앞서 말한 칼믹도 그렇고, 이제 언급할 구시 칸의 티베트 원정도 그러하죠. 


16세기 알탄 칸 이후 몽골과 오이라트에서 티베트 불교는 매우 중요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알탄 칸은 티베트 원정을 간 후 달라이 라마 4세를 옹립했고, 대원 울루스 이후 다시 몽골과 티베트의 정치-종교적 연합을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몽골계 부족은 티베트 내란에 개입하고 청해성 인근으로 이주하게 되었죠. 하지만 17세기 초 달라이 라마 4세 사후에 티베트에서 다시 시작된 내분에서 달라이 라마 4세 세력인 겔룩파를 돕던 청해성의 몽골군이 칼카부의 몽골군에게 패하였고, 티베트는 오이라트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에 오이라트의 구시는 1640년 오이라트군을 이글고 개입해 칼카부를 격파하고 겔룩파에게 '칸'의 지위를 얻게 됩니다. 칭기즈칸 황금씨족에 대항할 수 있는 권위인 티베트 불교의 겔룩파, 즉 달라이 라마 파벌의 권위를 얻은 것이죠. 이제 칸이 된 구시 칸은 티베트의 정복을 계속하여 1642년 달라이 라마 5세에게 티베트의 왕이란 칭호까지 받게 됩니다. 이후 구시 칸은 준가르로 돌아갔지만 그와 함께 온 오이라트의 일부는 청해성의 코슈트 칸국을 만듭니다. 하지만 오이라트의 티베트 통치는 구시 칸의 사후 달라이 라마 5세의 정치력으로 끝나버렸습니다-_-;


이제 한편 오이라트의 내분에서 강해진 파벌은 이전 초로스 투먼의 일부, 또는 대체로 추정되는 준가르부였습니다. 준가르부가 오이라트를 정복했는가, 아님 준가르부를 중심으로 통합했는가는 다른 의견들이 있어서 까리한데 이후 상황을 보면 준가르부를 중심으로 오이라트를 통합한, 즉 오이라트 4부족 연합의 계승자로 준가르 칸국이 성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최후의 유목제국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준가르 칸국의 흥망이 시작되는 것이죠. 이러한 준가르 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역시 갈단 보슉트 칸일 것입니다. 하지만 갈단 보슉트 칸은 일반적인 이미지와 의외로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갈단 보슉트 칸은 원래 티베트 불교의 승려였걸랑요(...)


앞서 말한 티베트 불교와 몽골의 정치-종교적 밀접한 관계로 인해 유력한 신분이었던 갈단은 승려가 되어 라싸에서 교육을 받았고 1666년에 준가르로 귀환합니다. 얼마 안되어 준가르에 내분으로 그의 형이었던 셍게의 암살 이후 암살자를 진압하고 달라이 라마 5세에게 타이지의 칭호를 받으면서 준가르의 실력자가 됩니다. 타이지는 그냥 황태자와 비슷한 늬앙스로 생각하면 되고-_- 그렇다고 폭풍을 몰고오고 설사를 하고 만년 2등이었던 그분을 열심히 까는 것은 자제효. 여튼; 갈단 타이지는 자신을 중심으로 준가르를 통합해 나갔고 1678년에는 달라이 라마에게 텡겐 보슉트 칸이라는 호칭을 받았습니다. 이제서야 갈단 보슉트 칸이 된 것입죠-_-;; 같은해 갈단 보슉트 칸은 청해성의 오이라트인 코슈트 칸국을 정벌하고, 이듬해는 하미와 투르판, 1680년에는 타림 분지를 공격하며 준가르의 판도를 급속도로 확대합니다. 그의 원정은 계속되어 1684년에는 타슈겐트까지 점령하기에 이르죠. 다만 이후 기록을 보면 정복보다는 점령후 삥뜯기로 보입니다만 일단 패스. 


이렇게 준가르가 갈단 보슉트 칸을 중심으로 급속히 통합되고 있는 동안에 몽골은 여전히 분열-_- 겉으로는 청에 신속한체 계속 내분 벌이다 한 파벌이 갈단 보슉트 칸에게 헬프 요청. 그 결과가 바로 1688년 갈단 보슉트 칸의 외몽골 침입입니다. 이 이후는 이제 아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갈단 보슉트 칸은 청과의 전쟁을 시작하고 청군을 크게 고전시켰지만 1697년 결국 전사하고 말죠. 이후 준가르는 멸망..했다고 생각하는 분이 대부분일텐데. 갈단 보슉트 칸이 죽었을 뿐, 준가르는 여전히 강력한 힘을 보여줬습니다. 갈단 보슉트 칸의 일파가 패한 대신, 콩 타이지였던 체왕 랍탄이 준가르를 계승합니다. 그리고 이 때가 준가르의 전성기였습니다. 그런데 다들 갈단 보슉트 칸 때 멸망한줄 알고 있어(...)


갈단 보슉트 칸을 대신하여 준가르를 이끌게 된 콩 타이지 체왕 랍탄은 사방으로 확장을 하여 준가르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체왕 랍탄은 카자흐 족을 공격하여 대패시켰고, 티베트에 재차 개입을 하면서 1715년 청과의 전쟁을 재개했습니다. 1717년 체왕 랍탄은 티베트로 준가르군을 보내 달라이 라마 6세를 강제 폐위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티베트인의 민심을 잃게 되어 티베트인들은 청의 개입을 바라게 되었고, 강희제는 1718년 티베트로 원정군을 보냈지만 패합니다-_-; 1720년 다시 티베트로 군대를 보내 준가르군이 방심한 틈을 타 라싸에 입성하는데 성공하고 준가르군은 티베트에서 철수합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코슈트부가 청에 복속되었죠. 하지만 준가르의 세력은 아직 막강했습니다. 


1727년 체왕 랍탄이 독살된 후 갈단 체렌이 내분을 수습하고 준가르의 콩 타이지가 됩니다. 즉위한지 얼마 안되어 갈단 체렌은 막북의 칼카부를 침공하였고 청과 공방전을 한 후에 화약을 맺고 칼카부와 준가르의 경계를 알타이 산맥으로 결정지었습니다. 그리고 서방정벌에 나셨죠. 1740년부터 카자흐를 정벌한 갈단 체렌의 준가르군은 카자흐군을 연이어 격파하고 타슈겐트를 재차 점령합니다. 코칸드 칸국은 점령에는 실패했지만 공납을 받아내었죠. 이렇게 준가르는 의외일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막강한 국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대북방전쟁 때 러시아군에 포로 잡혀서 시베리아로 끌려간 후 또 준가르군에게 포로로 잡혀 17년간 준가르에 머물며 화포를 만들고 군대를 조직하고 지도를 만든 스웨덴인 요한 구스타프 레나트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그는 준가르 지도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죠. 당시 준가르는 자체적으로 화약과 무기를 생산하고 농업을 시작할 정도로 나름 시대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1745년 갈탄 체렌의 죽고 내분이 일어나면서 준가르는 급격한 속도로 쇠약해졌고 1755년 청에 의해 멸망했죠. 내분으로 인해 준가르는 100일간의 작전만에 멸망했지만, 이후에도 반란을 일으키며 저항했습니다. 이 때문에 청의 건륭제는 준가르인을 학살했고 준가르 분지에 살던 오이라트인의 수는 급감합니다. 안그래도 연이은 전쟁과 천연두의 유행, 탄압을 피하기 위한 도주로 급감했던 인구는, 청의 학살까지 겹치니 준가르 인구 60만여명중 80%에 가까운 수가 사라졌고, 준가르 분지는 갑자기 빈 땅이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오이라트사의 마지막 장이 펼쳐집니다. 한동안 서술을 하지 않았던 토르구트부, 즉 칼믹 타타르가 고향땅으로 귀환하기 시작합니다. 


1610년부터 토르구트부를 중심으로 볼가강 유역으로 이주한 칼믹 타타르는 1635년경이 되면 거의 이주를 완료하여 노가이 칸국을 쫓아내고, 크림 타타르, 카자흐족과의 전쟁을 하게 됩니다. 러시아는 같은 적을 가진 이들과 동맹을 맺게 되었고, 칼믹 타타르는 코사크와 비슷한 대우를 받으며 러시아의 전쟁에 동참하죠. 하지만 완전 예속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칼믹 타타르는 여전히 오이라트로써의 정체성을 지키며, 준가르, 코슈트등과 연락하고, 통혼을 하며, 오이라트 4부족 회의에 가능하면 참여할려고 했었고, 자신들의 주도로 오이라트를 재통일 하려고도 했으니까요. 1669년 칼믹 타타르를 이끌게 된 아유카는 1673년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물론 러시아에서는 신속이라고 하고) 1677년부터 오스만, 크림 타타르하고 싸웠습니다. 하지만 1683년부터 오스만과 크림 타타르의 뇌물(...)로 중립을 지키고 1700년 대북방전쟁이 발발하면서 이젠 스웨덴과 싸웁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스웨덴인이 칼믹 타타르에게 포로로 잡힌 이후 준가르까지 끌려가기도 하죠. 대북방전쟁 이후인 1722년 러시아의 황제인 표트르 1세는 칼믹 타타르의 아유카와 친히 회견을 하면서 1만기의 기병의 공급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이 때 아유카의 반응도 멋진 것이 우리의 전력이면 5000기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했고요. 즉 니가 급하지 우리가 급함? 그리고 우리가 니네한테 꿀릴게 뭠미? 라는 반응입니다(...)


한편 아유카는 준가르, 티베트와의 연결도 계속하여 통혼을 하였고, 갈단 보슉트 칸이 죽기 직전에 달라이 라마에게 칸의 지위를 받게 됩니다. 경쟁자였던 체왕 랍탄이 콩 타이지의 칭호를 가진 것과 비교하면 정통성에서 우위에 서게 된 것이죠. 그래서 15000호의 인원을 아들과 딸려서 티베트로 보내 오이라트를 차지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체왕 랍탄이 이를 습격하고 15000호를 합병. 아들내미는 겨우 칼믹 타타르로 튀고. 아유카는 파워에서 밀리니 걍 GG. 열심히 인근지역을 삥뜯고 살아갑니다. 러시아에게도 무슬림보다는 종교적으로 반감이 적은 불교도가 그쪽에 사니 완충지대로써 아싸 좋구나! 하면서 잘 써먹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러시아의 힘이 강해지자 칼믹 타타르는 생활상에 난점을 겪게 되었습니다.


18세기 후반 예카테리나 2세의 치세에 접어들면서 러시아 제국은 돈강 유역에 독일인과 러시아인을 이주시켰고 이는 칼믹 타타르족의 생활터전을 뺐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카테리나 2세가 연이어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하면서 칼믹 타타르는 더욱 더 심한 군사지원을 요구받았고 파워에서도 밀리게 됩니다. 이 찰나 준가르가 멸망하고 학살, 전염병으로 인해 준가르 일대가 빈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죠. 이에 칼믹 타타르를 이끌던 토르구트부의 우바시 칸은 조상들의 땅으로 귀환을 결정하고 청에 연락을 시작합니다. 건륭제는 이 연락을 듣고 기뻐하면서 협조하겠다고 하고 예카테리나 2세는 첩보를 입수하고 경악을 하게 됩니다. 우바시 칸은 발뺌하였으나, 계속 이주 준비를 하였고 1771년 카자흐 족을 정벌하겠다는 핑계로 부족민을 모아 조상의 땅으로 귀환을 시작합니다. 


그 귀환은 가히 고난의 행군이자 눈물의 길이라고 칭할 수 있었습니다. 20여만명의 칼믹 타타르는 볼가강 좌안에 집결하여 준가르 분지로 출발합니다. 이중 6~10만은 귀환을 하지 않았는데, 일부는 귀환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여, 일부는 볼가강이 생각보다 빨리 해빙하여 시간이 없어서 볼가강 유역에 남았습니다. 이렇게 칼믹 타타르의 탈출이 시작되자 경악한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군과 코자크들을 동원하고 카자흐, 우즈베크족 등에게 연락을 하여 필사적으로 칼믹 타타르의 탈출을 막았습니다. 칼믹 타타르의 집단은 군인만이 있는 것이 아닌, 가족들을 동반한 대규모의 이동을 했기 때문에 엄청난 희생을 치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투에서 연이어 5000명, 1만여명씩 사망하고, 얼음이 깨지면서 5000명이 숨지고, 가축의 절반을 어쩔 수 없이 죽이고 가는 등, 눈물겨운 희생을 치렀고 끝없는 눈이 쌓인 설원지대, 적들이 물마다 독을 탄 사막지대를 겨우 지나 무기까지 다 버리고 수만의 적들과 싸워가며 출발인원의 절반도 되지 않는 8만여명의 칼믹 타타르들이 청의 국경을 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의 행군 때문에 중국측 기록에서도 대부분 굶주리고 지쳐 실성한 상태였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들 중 만여명이 식량을 지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안되어 죽고 69000여명만이 겨우 살아남아 준가르 분지에 정착합니다. 이들과 살아남은 준가르인이 현재 신강-위구르 자치구의 몽골족의 조상이 되죠. 


이후 오이라트의 역사는 청과 러시아에 치이는 과정이었습니다. 준가르인과 청에 귀환한 칼믹 타타르를 중심으로 한 오이라트는 청에 복속되어 살아가다가 청말민국초의 혼란기 때 이웃한 위구르족 무슬림과 투쟁하면서 또다시 절반의 인구를 상실합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무장했고 홍군이 진격할 때까지 나름 세력권을 형성했지만 홍군의 신강 정벌 때 항복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돈강 유역의 칼믹 타타르는 그들의 대탈출에 고무된 코자크와 농민들이 푸카초프를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키고, 러시아군에 진압당하자, 요주의의 대상이 되면서 러시아의 직접통치대상이 됩니다. 칼믹 타타르인은 돈 코자크에 편입되고, 칼믹 칸국 지역은 러시아의 행정조직에 편입되었죠. 많은 칼믹인들은 러시아화가 됩니다.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러시아 혁명의 주역이었던 블라디미르 레닌이 부계쪽으로 칼믹 타타르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말도 있죠. 


그 때문인지 소련은 칼믹 타타르 지역에에 칼믹 공화국을 설치했고요. 하지만 칼믹 타타르는 적백내전 때 주로 코자크들과 함께 백군의 편이 되었고, 괘씸죄로 인해 스탈린의 강제이주의 희생양이 되었다가 흐루시초프가 집권하자 고향인 칼믹 공화국에 귀환을 허가 받습니다만, 그동안 많이 이주한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 때문에, 그리고 소련시절 자국어의 사용을 억압받았기 때문에 러시아에 더더욱 동화됩니다. 마치 고려인처럼요. 하지만 많은 칼믹인들이 아직까지 그들의 종교인 티베트 불교를 유지하고 있고, 자신들의 언어인 칼믹어를 복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편 몽골에서는 청의 멸망이후 고난의 시기를 겪고 겨우 독립을 하면서 드디어 오이라트인들을 동족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듯 합니다. 오이라트에게 지배당하느니 차라리 청에 지배당하겠다고 했던 것을 생각하면 참 난감하지만-_-; 아무래도 저항적 민족주의+동병상련이 아닌지 조심스레 추정해보긴 합니다. 결과적으로 현재 오이라트인 50만명 중 20만이 몽골에, 17만에 러시아에, 13만이 중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PS.쓰고 보니 22KB-_-;; 4부로 나눌 수 있는 분량을 하나로 합해버렸구나(...) 그땀시 쓰느라 뒈지는줄 알았을 뿐이고-_-;; 그러니 리플은 제발 좀 달아달라고 헐떡댈 뿐이고 ㅜ.ㅜ 기분전환삼아 짤은 또 3D로 ㄱㄱㄱㄱ 참고로 본햏은 이처자 누군가 모름 ;ㅅ;

PS2.한국어 자료가 하도 적어서 고생했다능 ㅜ.ㅜ  오이라트에 대해 무려 A4용지 15~20장 분량이나 번역해 놓은 데가 있긴 한데 하필이면 쿠투넷 OTL 왜 하필이면 환빠인 것이냐!!! OTL 자료는 가끔(?) 나오는 개소리(...)를 제외하면 원문을 포함해서 대조작업까지 가능할 정도로 잘 번역했는데 그러면서 환빠 ㅜ.ㅜ 도대채 넌 왜 환빠인 것이냐!!! 참고로 원문은 영문 위키피디아(...) 

덧글

  • 대공 2011/11/22 01:58 # 답글

    0. 궤이짤을 올리신다면 유혈사태는 없을것입니다. 컥컥컥컥.
    1. 대륙구 부족이군요;;; 서쪽에서 동쪽 끝까지....
    2. 역시 남자는 항상 여자문제 안 일으켜야 합니다
    3. ㅋㅋㅋㅋㅋㅋ 참 ㅠㅠ
  • 앨런비 2011/11/22 08:10 #

    게이짤은 호타루말고는 몰라서(...) 오이라트의 활동범위를 보면 ㅎㄷㄷ할 뿐이고, 막장드라마는 지겨울 뿐이고 ㅜ.ㅜ
  • 자하벅스 2011/11/22 02:02 # 답글

    진짜 이런거 쓸 능력 갖추려면 책을 얼마나 읽어야 되는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볼때마다 감탄하며 눈물 흘리고 갑니다 ㅠ.ㅠ
  • 앨런비 2011/11/22 08:11 #

    참고자료가 주로 미야자키 준코의 최후의 몽골유목제국이네효. 그 외에는 위키피디아와 몽골사 정도만 봐도 뭐;
  • ㅇㅇㅇ 2011/11/22 02:11 # 삭제 답글

    야 이거 또 그 난리를 치고도 이상한 여자사진으로 계속 조회수 조작질이네?
    누군가의친구라는 애 글보니 운영자가 이런 수작질을 더이상 터치 안한다고 해놨던데 정말 웃기는 짓이지.
    내일 모니터링이 알아서 없애면 또 블로그 비공개로 돌리고 네 덜떨어진 로자뭐시기인가 하는 네 친구동원해서 또 난리 지겨보라고? ㅋㅋㅋ
  • 앨런비 2011/11/22 08:11 #

    아이피의 다양성을 추구했으면 한다 ;ㅅ;
  • 대공 2011/11/22 15:15 #

    ㅋㅋㅋ
  • 앨런비 2011/11/22 17:20 #

    이젠 아이피가 대충 봐도 익숙학 지경 ;ㅅ;
  • 해색주 2011/11/22 05:56 # 답글

    뭐 변함없이 덜떨어진 비로긴이 헛글을 다는군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저 지역이 꽤나 길어 보이는데 유목민족들은 잘도 왔다갔다 하는군요.
  • 앨런비 2011/11/22 08:11 #

    뭐 마지막은 눈물의 길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참 신기합죠;
  • 모에시아 총독 2011/11/22 05:58 # 답글

    오이라트라고 하면 토목보의 변 밖에는 몰랐는데 얘들도 나름 흥미로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구만요.
  • 앨런비 2011/11/22 08:11 #

    왜 다들 토목의 변만 아는 것인지 ㅜ.ㅜ
  • Karl XII 2011/11/22 10:41 #

    본격 오이라트 리즈 시절이라서 ㅠ
  • 앨런비 2011/11/22 10:45 #

    오히려 리즈시절은 1700년경인데=_=;;
  • 아르니엘 2011/11/22 13:00 #

    그거야 그거만 가르쳐주니까요. 자료도 적고
  • 앨런비 2011/11/22 13:21 #

    이동네 자료가 일단 러시아어가 많아서 ;ㅅ;
  • 원더바 2011/11/22 15:12 #

    역사시간에 가르쳐준게 그거뿐입니다(..).

    대학교에선 딱히 고대 한국사나 고대 동/서양사만 들어서(..)
  • 앨런비 2011/11/22 15:13 #

    아니 사실 교수들도 이거 아는 사람 별로 없긴 할듯(...)
  • Magneton 2011/11/22 07:02 # 답글

    오오 새로운 역사 이야기가. 게다가 잘 모르던 지역이라, 열심히 잘 보겠습니다. (선리플)
    위의 ㅇㅇㅇ씨는, 긍정적으로 보자면 앨런비님의 글에 두번째로, 것도 새벽 2시에 글을 달아줄 정도의 열독자인 듯 합니다. 물론 읽는다고 내용을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 앨런비 2011/11/22 08:11 #

    ㄲㄲㄲㄲㄲㄲ
  • 슈타인호프 2011/11/22 08:50 # 답글

    눈물겨운 민족사 눈을 떼지 못하고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역시 유목제국은 남자의 로망 중 하나입니다!!!!

    덧 : 칼믹은 칼무크라는 표기도 있더군요. 그리고 의외로 러시아 귀족들 중 몽골 혈통을 받은 사람의 숫자가 꽤 된다고 들었습니다. 제국이 동방진출을 하는 과정에서 흡수한 몽골계 칸국의 귀족들에게 러시아 작위를 주었고, 이들이 러시아 귀족들과 통혼하면서 피가 섞였다고요.
  • 앨런비 2011/11/22 10:37 #

    칼묵이란 표기는 본문에서 한번 언급은 했는데 역시 현재는 대채적으로 칼믹이라고 하고 있길래 본문에선 칼믹으로 통일했습니다 ;ㅅ; 러시아에 몽골계 혈통은 생각외로 많졈 =ㅅ=
  • 리리안 2011/11/22 09:08 # 답글

    우와 중앙아시아 일대의 유목 민족에 대해서는 두루뭉실하게만 알고 있었는데 대단히 흥미진진하네요! 왜 이런걸 교과서에서는 안 가르치는지...;ㅁ;
  • 앨런비 2011/11/22 10:38 #

    일본쪽은 잘 연구한듯 한데 한국은 겨우 통사가 조금씩 나오는 정도라 ㅜ.ㅜ
  • Karl XII 2011/11/22 10:03 # 답글

    난 유목제국사를 발로 읽었단 말인가...ㅠㅠ 강희제때 청이 준가르를 물리쳤다. 끝 이런 분위기인데... 현실은 더 복잡하군요.
  • 앨런비 2011/11/22 10:38 #

    갈단 보슉트 칸 때 준가르가 멸망했다는 것 자체가 오해죠. 갈단 보슉트 칸 생전에 체왕 랍탄은 이미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갈단 보슉트 칸이 죽자마자 준가르를 통치했으니께요.
  • DeathKira 2011/11/22 11:00 # 답글

    원 이후의 유목민족사는 아무래도 관심도가 떨어졌었는데,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습네요.
    확실히 이 지역은 우리 말로 된 자료가 너무 적어서 ㅠㅠ
  • 앨런비 2011/11/22 11:19 #

    몽골과 오랑캐 유목제국이란 책이 새로 나왔더군요 ;ㅅ; 나름 이 시점을 잘 서술하는 듯 한데 학교도서관에 없어서 보지 못했을 뿐이고 ㅜ.ㅜ 대신 오래전에 나온 미야자키 준코의 최후의 몽골유목제국이 통사로 잘 다루기...는 하죠. 다만 저자가 일본인이라 표기법이 뭔말인지-_- 번역도 몽골사학 전문이라는 사람이 했으면서 완전 개떡같이 해서 일본식 표기법(ㆍ)이 난무해서 눈이 아프고 일본애들 혀 짧은 발음 때문에 대부분 고유명사를 알파벳 보면서 변환했을 뿐이고-_- 참고로 일본쪽은 kh발음을 ㅎ계열로 하는 경향인데, 한국은 ㅋㅎ둘다 쓰지만 ㅋ를 많이 쓰는 편이라 죄다 ㅋ로 바꿨습니다 ;ㅅ;
  • 계원필경 2011/11/22 12:03 # 답글

    어째서 러시아의 칼미크 공화국에 불교도 분포가 왜 이렇게 이상하리 만큼 높을지 고민을 했었는데 오이라트족의 이동때문에 그랬던 것이군요 ㄷㄷ;;; (뜬금없이 동방정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불교도들이 있어서;;;)
  • 앨런비 2011/11/22 12:25 #

    무려 거기까지 가서 달라이 라마와 연락을 했다는게 ㅎㄷㄷㄷ
  • 객관적진리추구 2011/11/22 13:05 # 답글

    정말 좋은 정보 알고 갑니다 ^^
  • 앨런비 2011/11/22 13:21 #

    ㅜ.ㅜ
  • 2011/11/22 13: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앨런비 2011/11/22 13:21 #

    걍 메일주소 불면 보내줄텐데 ㅉㅉ
  • 셔먼 2011/11/22 14:22 # 답글

    순서대로 보자면 1640년에 구시가 칼카부 몽골을 토벌한 다음 몽골과 화친을 맺었겠군요.
  • 앨런비 2011/11/22 15:01 #

    그 순서인가는 몰겠네요. 근데 구시가 토벌한 다음은 아닌듯 하고, 화친이 구시의 티베트 침공과 동시에 일어났거나, 구시가 화친 직후에 티베트를 침공했더나 둘중 하나겠죠.
  • 셔먼 2011/11/22 15:10 #

    아무래도 전자인 듯 싶습니다.
  • 앨런비 2011/11/22 15:12 #

    위키피디아에서는 1639년 원정을 준비하고 1640년 겨울에 티베트군을 격파했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월단위가 안나오면 이거 ;ㅅ;
  • 로자노프 2011/11/22 14:27 # 답글

    칸이라는 지위는 키야트 보르지긴의 후예만 얻을 수 있는 건가 했는데 달라이 라마의 인정으로도 가능한 거였던건가요?
  • 앨런비 2011/11/22 15:01 #

    달라이 라마의 인정으로 겨우 되는 것.
  • 야스페르츠 2011/11/22 14:30 # 답글

    젠장. 원 이후의 유목민족사가 이렇게 화려했을 줄이야... 새로운 걸 알아갑니다. 그나저나, 난 르네 그루세의 책을 대체 어떻게 읽었길래 이렇게 기억이 안나지? ㅡㅡ;;;
  • 앨런비 2011/11/22 15:01 #

    르네 그루쎄의 책을 읽다 만 1人(...)
  • 라라 2011/11/22 15:09 # 답글

    유목민족 역사도 농경민족 역사 못지 않게 깊군요

    수고하셨습니다.
  • 앨런비 2011/11/22 15:13 #

    ㅜ.ㅜ
  • 한단인 2011/11/22 17:04 # 답글

    르네 그루세 책은 돌궐하고 몽골사만 깔짝거리고 난 다음에 책장 어딘가에 쳐박아 두었는데 이것도 나름 아스트랄하구려

    스웨덴 사람이 준가르에서 깔짝대고 있었다니 충격과 공포요.
  • 앨런비 2011/11/22 17:14 #

    더 충공깽은 거기서 스웨덴 포로 여자와 만나 결혼(...) 그 스웨덴 포로는 칼믹에게 잡혀서 준가르로 보내진 것(...)
  • -_- 2011/11/22 19:30 # 삭제 답글

    사진은 누굽니까? 출저 좀.
  • 앨런비 2011/11/22 19:31 #

    찾아보니 모로코의 자히아 드하르. 만 16세 때 고급 매춘부로 놀아 프랑스 대표팀 멤버 3명을 청소년 보호법으로 대표팀에서 탈락시킨 무서운 꾸냥(...)
  • 위장효과 2011/11/22 20:01 # 답글

    르네 그루세의 책 발로 읽다 만 1인 추가요. 도대체 오이라트에 대한 부분은 이렇게 깜깜한건지...

    칼묵-왜 칼믹으로 통일했는데 굳이 칼묵이라 적었는지 이유 밝혀짐-하면 에이지 3에서 러시아측 업데이트 유닛으로 나오죠. 거기선 그냥 경기병 업그레이드 버젼정도. (뭐...에이지 시리즈의 엽기성이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것이니)

  • 앨런비 2011/11/22 22:48 #

    원래 칼묵과 칼믹을 둘다 혼용해요. 에이지3는 저도 해봤고 ㄲㄲㄲ
    오이라트사는 의외로 다들 잘 모릅니다.; 준가르 칸국을 오이라트와 완전 분리해서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 누군가의친구 2011/11/22 22:42 # 답글

    사람들이 토목의 변을 먼저 떠오르는거야, 중국역사상 '황제가 야전에서 포로로 잡힌 최초의 사례'니까 워낙 임팩트가 커서 말이죠. 뭐, 당시 조선에서도 큰 충격이니까 할말 다했죠.
  • 앨런비 2011/11/22 22:48 #

    하지만 문젠 준가르부를 오이라트와 분리해서 보는 것-_-;;
  • 초록불 2011/11/22 23:50 # 답글

    저 처자는 이제 역밸 공식 짤방으로 등극하는 건가요... (내용과는 관계없는 뻘플이라 죄송...^^;;)
  • 앨런비 2011/11/22 23:51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死海文書 2011/11/26 13:36 # 답글

    전 언어학 책에서 오이라트라는 말을 주로 보고 역사책에선 못 봤네요. 중앙아시아 언어 이야기 할때면 이상하게 약방의 감초처럼 나오던 언어라서 말이죠.
  • 앨런비 2011/11/27 15:26 #

    뭐 몽골어로 통합서술 할 떄가 많습니다만 'ㅅ';
  • Azrael 2019/04/05 22:00 # 삭제

    몽골'공화국'에 사는 흔히 몽골인이라 불리는 할하부 몽골인들도 칼미크-오이라트어라 불리는 칼미크인과 오이라트계 몽골인이 말하는 말을 들으면 최소 90퍼센트 내지 전부 이해한다네요. 사실 상 사투리죠. 몽골어의 방언에 포함되기에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근데 중앙아시아 언어라 하면 카자흐어, 키르기스어, 투르크멘어, 우즈베크어, 위구르어같은 튀르크어일텐데 자칭 동북아시아라는 몽골과 그 일부인 오이라트가 중앙아시아언어에 영향준게 있나요? 몽골이 아무리 튀르크랑 닮아도 언어 하나는 다르다고 들었거든요
  • bravebird 2012/05/24 19:09 # 답글

    으와. 방대한 분량에 새로운 지도자료까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지금 중앙민족대에서 '몽골티베트민족관계사'라는 수업 과제 준비중인데 진짜 한국어 자료가 적네요ㅠㅠㅠ 이야기하신 일본 책은 아마 번역본이 없을 듯하고(.....)

    그나저나 이걸 정리하실 정도의 내공은 어떻게 쌓으신 건가요! 전 청조사 조금 깔짝대다가 중앙민족대학으로 교환학생을 와서 이쪽 동네 들이대기 시작한 뉴비거든요. 아직 생소한 게 많네요. 르네 그루쎄 책은 비교적 앞부분인 한당시기 서역사 부분 정도까진 이럭저럭 재밌게 읽었는데, 중간에 몽골제국사 부분에서 참혹히 멸ㅋ망ㅋ.... 제일 끝에 오이라트 관련 내용은 그나마 조금 알듯말듯했는데 나오자마자 금방 끝나버리고ㅠㅠ 일단 조금 더 얇고 쉬운 책들부터 읽고 나서 다시 여러 번 반복해야겠어요.

    휴 어쨌든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처음에 나오는 짤방이랑 배경그림이랑 블로그 제목보고 많이 웃었어요 ㅋㅋㅋㅋ 자주 올 거 같습니다. 링크도 추가했고요 ㅋㅋㅋㅋ 처자들 이미지 때문은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샤방샤방 2012/09/24 02:53 # 삭제 답글

    이야...............정말로 흥미진진하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짜 잼있네요. 이런 알지못한 유목민사를 또 알게되다니..!!!
  • Azrael 2019/04/05 21:54 # 삭제 답글

    오이라트는 참 독특하네요. 누가봐도 몽골의 일분데 북원과 칼을 대고 싸워대고 북원에서는 이들이 몽골제국의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 변종으로 본 것 같아요. 한 때는 외몽골 전역을 지배하고 신장과 티베트 일부까지 영향권에 들었던걸 보면 진짜 어마어마하네요. 거의 제 2의 몽골의 기상이네요. 오이라트-북원-명-티베트 관계의 역사를 보면 이들은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걸쳐진 역사를 가진거 같은데(더 멀리 나아가면 준가르-내외몽골-청-티베트) 또 일부는 카프카스까지 날아가서 러시아, 오스만, 폴란드같은 애들이랑 같이 지내는걸 보면 역시 유라시아 유목민은 존재 자체가 동서양을 넘나드는 마술을 보여주는거 같네요. 이렇게보면 꼭 동서양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도 않네요. 이게 초원길 파원가봐요. 근데 그렇게 강력했던 이들인데 준가르 제국의 멸망과 학살, 이후 일어난 일련의 민족 간 분쟁으로 말살되다니 안타깝네요. 살아남은 오이라트계 몽골인들은 일반 몽골인과 다른 기억의 향수병이 있을 것 같네요. 칼미크는 거의 살아있는 화석이네요.
  • 안박 2019/08/09 16:58 # 삭제 답글

    그동안 알던 유목제국사.. 알던 게 아니었네요. 흥미진진하게 메모해가면서 정독했습니다. 수고 많으셨네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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