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사 오대 대왕에 대해서. by 앨런비


태국사를 보면 마하랏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태국식으로 혀짧게(...) 읽어서 뭠미 하기 쉽상이지만 별거 아니고 마하 라자에요(...) 즉 위대한 군주. 그런데 재밌는 것은 태국사에서 이 마하랏의 칭호를 받은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도 세계사적으로 나름 흔한 패턴입니다만, 한국에서는 그냥 삘받는대로 붙이는 것이라 다를 뿐이죠. 여튼 그 오대 대왕의 순서를 나열하면 이렇게 됩니다.

쑤코타이의 람캄행 대왕.

아유타야의 나레쑤언 대왕.

아유타야의 나라이 대왕.

톤부리의 딱씬 대왕.

현왕조의 라마 5세 쭐랄롱껀 대왕.

이렇게 다섯명입니다. 재밌는 것은 여기서 대왕이 된 딱신은 딱신을 쫓아낸 현 왕조에서 임명했다는 것이랄까요? 그 쿠데타가 워낙 상황이 개떡같으니 쫓아냈다는 표현도 부분적으로 맞긴 합니다만 여튼. 이렇게 다섯명의 대왕이 당연히 다른 왕들보다 절대적으로 통치를 잘했다고 하기에는 아유타야의 뜨라일록이나 현왕조의 라마 1세 쭐랄록, 라마 4세 몽꿋 같은 태국사의 다른 능력있는 군주들도 있어서 뭐합니다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가장 잘 나갔던 왕들이라고 유명한 왕들이죠. 여튼 말 나온 김에 이들에 대해서 간단 간단하게 서술해 보겠습니다.


첫번째의 대왕은 람캄행입니다. 그는 요즘 문명으로 인해 유명해진 왕이죠(...) 이에 관련해서 쓴 글이 워낙 태국사의 안습한 현실을 까는 글이라 그걸 기억하신다면 람캄행을 대왕으로 봐야하냐 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글이 좀 오바한 것이라는 것을 일단 밝혀 놓고-_-; 쑤코타이가 분명 이게 영토 지도임? 이게 쑤코타이 동맹이여? 쑤코타이 왕국이여?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체계이긴 합니다만, 단순히 '쑤코타이 동맹' 수준으로만 까기에는 직할령도 꽤나 있었고, 롭부리를 공격해서 타이족의 남진을 도왔으니까 분명 높게 평가할 만 합니다. 


또한 쑤코타이를 중심으로 뭉친 타이족이 동남아의 강대국이었던 앙코르조 캄보디아와 민족섬멸전에 가까운 전쟁을 하고 있던 것은, 람캄행 제위 무렵에 앙코르를 방문한 주달관의 진랍풍토기에도 남아 있죠. 여기에 쑤코타이는 버마 남부의 정세에도 개입한 흔적이 진하게 나타나고, 타이족이 이즈음에 말레이 반도 중부 나콘 씨 탐마랏까지 건설한 것을 보면 람캄행의 즉위와 활동이 타이족의 진출에 상당한 역활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라면 타이 문자의 창조자로 알려졌으면서, 람캄행 비문도 발견된 시츄인데, 고놈의 발견자가 하필이면 왕위에 오르기 전 라마 4세 몽꿋이라서, 권위로 적절히 포장한 것인지?(...) 란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만(...) 그래도 그 비문의 타이어가 지금이나 몽꿋 당시와 분명 다르다고는 하더군요. 그런 것을 보면 진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만, 제가 뭐 태국사를 전공하면서 태국어를 헉헉대며 배울 것도 아니니 패스. 


그 다음의 대왕은 나레쑤언입니다. 나레쑤언은 연재글로 뻘뻘대면서 쓴 것을 기억하실 분이 많을 테니 굳이 많은 설명을 할 필요는 없겠죠(...) 솔까말 저에게 태국사 최강의 먼치킨을 꼽으라고 해도 나레쑤언을 꼽겠습니다 레알.; 태국사의 이순신, 태국사의 치트키, 혼자 힘으로 주변국과 자국의 운명을 바꾼 굇수. 외교, 통상적으로도 아유타야를 먼치킨으로 만든 인간(...) 그것이 바로 나레쑤언입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진실. 이것은 제가 나레쑤언 빠돌짓을 한다고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태국내의 위상은? 당연히 절정. 그리고 외국의 태국사 연구자들은? 태국사 시대구분의 기준으로 나레쑤언이 들어갈 정도입니다.;;


제가 가끔 드는 예이긴 한데, 태국 역사에서 명저로 이름 난 Thailand. A Short History라는 책이 있습니다. 외국 태국역사학의 대가 데이비드 K 와이어트가 쓴 책인데. 그 책에서 나레쑤언 이전을 타이족 왕국들의 시대. 나레쑤언 부터를 아유타야 제국이라고 평하면서 버마와 전쟁과 나레쑤언의 반격 이후 아유타야는 그전의 아유타야와 다르게 되었다고 평합니다(...) 누구보다도 냉철해야할 사학자까지 이런 평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태국 역사에서 나레쑤언이 얼마나 중요하면서 사기스러운지(...)를 반증한다고도 할 수 있겠죠-_-;;


세번째 대왕은 나라이입니다. 아유타야의 최전성기를 누렸다고 하는 왕이죠. 하지만 나라이는 얼마전 연재글에서도 썼지만 평가가 모호합니다. 이 때가 아유타야의 최전성기라는데에는 부정적인 의견이 거의 없으나, 나라이의 통치가 그렇게 좋았냐에 대해서 말이 많이 나오는 편이죠. 오히려 대외 개방 하앍하앍하는 제국주의시대에 반발하는 사학적 해석이 크게 들어간 느낌이 크니까 말입니다. 그래도 나라이가 아유타야 역사상 상당히 강력하고 진취적인 왕이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는 없고, 그 당시 아유타야의 국력이 절정이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으니 평이 레알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전 나라이보다는 15세기 중반 뜨라일록이 더 낫지 않냐고 보는 편이고요(...) 자세한 논란은 걍 지난 연재글 보시고.


네번째 대왕은 딱신입니다. 딱신은 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나레쑤언과 함께 태국사 2대 치트키라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태국인이나 저나 나레쑤언에 좀 더 기울어진 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딱신의 사기도도 만만치 않고요;; 아유타야 함락 후 아유타야는 5개의 군벌로 분열됩니다. 딱신도 그 군벌중 하나로써 아유타야 함락 반년만에 아유타야를 수복한 후 구-아유타야 전토를 통합하고,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철저히 속국화, 버마의 침공을 모조리 막아내어 19세기 지역 초강대국이었던 시암의 기반을 만든 인물이죠. 캄보디아와 라오스의 속국화는 처절할 정도로 캄보디아 왕은 딱신 이후에 왕이 태국으로 끌려오고-_-; 라오스는 수시로 군대가 동원되는 그정도였습니다. 즉 같은 영토색으로 칠해도 무방할 정도죠.


하지만 딱신은 말년에 궁예처럼 미쳐버립니다. 그 원인은 중국인 혈통이 섞여서 그렇느니, 신분의 한계가 있느니 여러 말이 있지만 정확히는 모릅니다. 딱신이 맛이 가버린 것이 태국 현왕조의 왜곡이라는 주장까지 있지만, 딱신이 미쳐버린 것은 선교사까지 기록했으니 신뢰도가 낮아 보이고, 레알 맛이 간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_-; 이렇게 딱신의 궁예와 같은 똘짓으로 공포정치가 일어나고 처형자가 늘자 궁정쿠데타가 일어났고, 이 사건은 딱신의 친우인 차오프라야 차크리 장군이 캄보디아 원정에서 회군하면서 꼬이고 꼬입니다-_-;;;; 결과적으로 쿠데타 도중 딱신은 살해당하고, 쿠데타는 차크리 장군이 '정리'를 했죠. 이 차크리 장군이 딱신을 대신해 왕위에 오르니 바로 태국 현왕조의 초대왕 라마 1세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아무리 쿠데타 상황이 꼬이고 꼬여서 사실상 차크리 장군이 '정리'를 한 것이 맞다고 하나, 엄연히 차크리 장군은 딱신을 부정할 수 밖에 없는 위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왕조 다른 왕들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현왕조의 라마 4세던가 5세는 딱신을 공식적으로 마하랏이라고 인정합니다. 현왕조의 정통성 문제가 걸려있지만서도 딱신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는 것이죠. 물론 정통성 확보로도 연결이 가능합니다만, 이것이 현왕조에게 득이 될 것은 그닥 없는 것은 맞습니다. 즉 딱신은 찬탈자 가문조차도 인정할 수 없는 태국사의 먼치킨이라는 말로도 연결된다는 것이죠.


마지막 대왕은 라마 5세 쭐랄롱껀입니다. 라마 5세는 태국의 독립을 지켜내고 근대화를 이룬 것. 이것만으로도 대왕이라고 불릴만한 가치를 지닌 인물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기를 태국이 식민화를 피할 수 있던 것은 영국과 프랑스의 세력경계선에 있어서라고 말은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절반의 진실일 뿐이죠. 영국과 프랑스가 태국을 세력경계로 본 것은 맞지만 마음만 먹으면 분할을 할 수가 있었던 것도 맞습니다. 실제로 영국과 프랑스는 차근차근 태국의 영토를 삥뜯고 있었고요. 즉 태국의 상황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그닥 좋다고 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중에 즉위한 이가 바로 라마 5세입니다.


라마 5세는 태국의 근대화를 하면서 외교에 힘을 씁니다. 근대화는 비록 일본의 메이지 유신처럼 급격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아직까지 봉건제에 머물러 있던 태국을 완급을 조절하면서 서서히나마 근대화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이게 말로는 쉬워보이는데, 역사를 공부하신 분들은 개혁의 속도조절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_-; 특히 태국은 봉건제 국가에, 왕을 위협할 수 있는 귀족들도 드글드글했으니까 말입니다-_-; 하지만 라마 5세는 이 위기를 모두 넘기고 평화적으로 이 과제를 수행하는데 성공합니다. 보신전쟁으로 한번 뒤엎고 새로 시작한 일본과는 또 다른 것이죠. 


한편 외교적으로는 영국, 프랑스와 완급을 조절하고 숙일 때는 적절히 숙이면서 태국의 독립을 지키는데 성공했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겉으로만 보면 근 절반정도의 영토를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토들이 대부분 딱신과 라마 1세가 삥뜯은 영토라는 것이 문제(...) 오히려 남은 영토가 구-아유타야의 영토보다 더 넓었걸랑요(...) 즉 어차피 완전 우리 것이 아니면 걍 포기한다. 어쩔 수 없지만 망하는 것보다 낫지 않냐? 이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만 봐도 완충지 야그가 절반정도만 진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래도 태국이 근대화에 성공하고 내부의 봉건적 요소를 죄다 정리해 삥뜯길 껀덕지가 없어지자 더이상의 영토상실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태국은 동남아 유익의 독립국으로 남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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