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수군의 화포와 백병전 관련해서. by 앨런비

작년 즈음부터 계속 말했던 것의 연장으로.

임진왜란 조선수군을 칭송하다 못해 함포로 다 줘팼다라는 것이 최소 10년 이상은 유지되었는디.

그것은 실제와 매우 거리가 멀다는 것임.

관련해서 이번엔 임진장초로.


좌부장 낙안 군수 신 호는 왜대선 1척을 당파하고 왜적의 머리 1급을 베었는데 배안에 있던 칼 갑옷. 의관 등은 모두 왜장의 물건인 듯 하였으며, 우부장 보성 군수 김득광은 왜대선1척을 당파하고 우리나라 사람으로 포로되었던 1명을 산채로 빼앗았고, 전부장 흥양 현감 배 흥립은 왜대선2척을, 중부장 광양현감 어영담은 왜중선 2척과 소선 2척을, 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 완은 왜대선 1척을, 우부기전 통장이며, 사도진 군관인 보인 이춘은 왜중선 1척을, 유균장이며 발포 가장인 신의 군관 훈련 봉사나 대용은 왜대선 2척을, 후부장 녹도 만호 정운은 왜중선 2척을, 좌척후장 여도 권관 김 인영은 왜중선 1척을 각각 당파하고, 좌부 기전 통장이며 순천 대장인 전 봉사 유섭은 왜대선 1척을 당파하고 우리 나라 사람으로 포로되었던 소녀 1명을 산채로 빼앗았으며, 한후장이며 신의 군관인 급제 최 대성은 왜대선 1척을, 참퇴장이며 신의 군관인 급제 배 응록은 왜대선 1척을, 돌격장이며 신의 군관인 이 언양은 왜대서 1척을, 신의 대솔 군관인 훈련 봉사 변 존서와 전봉사 김효성등은 힘을 합하여 왜대선 1척을 각각 당파하였으며, 경상우도의 여러 장수들이 왜선 5척을 당파하고 우리 나라 사람으로 포로 되었던 1명(3명-全書)을 산채로 빼앗았는데, 합해서 왜선 26척을 모두 총통으로 쏘아 맞혀 깨뜨리고 불사르니 넓은 바다에는 불꽃과 연기가 하늘을 덮었으며, 산으로 올라간 적도들은 숲속으로 숨어 엎드려 겁내지 않는 놈이 없었습니다.


임진장초 옥포해전 부분에서 발췌.




그러자, 여러 장수들이 일시에 운집하여 철환과 장편전. 피령전. 화전 및 천.지자 총통 등을 비바람같이 발사 하면서 저마다 힘을 다함에 그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였습니다.

왜적들은 부상을 당하여 엎어지는 자와 부축하여 달아나는 자의 수을 알 수 없었으며, 높은 언덕으로 도망쳐 진치고서는 감히 나와 싸울 생각을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중위장 순천 부사 권준. 중부장 광양 현감 어 영담. 전부장 방답 점사 이 순신. 후부장 홍양 현감 배 흥립. 좌척후장 녹도 만호 정 운. 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 완. 좌별도장 우후이 몽구. 우별도장 여도 권관 김 인영. 한후장이며 신의 군관인 전 전 군관 고 안책. 급제 송 성.참퇴장 전 첨사 이 응화 등이 번갈아 드나들면서 왜선 전부를 당파 분멸하였으며, 김 완은 우리 나라 소녀 한명을 찾아내었고, 이 응화는 왜인 한명의 목을 베었는데, 왜인들이 멀리서서 바라보며 부르짖고 발을 구르며 대성통곡하는 것이었습니다.

-중략-


그날 당포에서 접전할 때, 우후 이몽구가 왜장선을 수색하여 찾아낸 금부채 한자루를 신에게 보냈는데, 그 부채의 한쪽 중앙에 쓰여 있기를「6월 8일 수길」라 서명하였고, 오른편에 「우시축전수(羽柴筑前守)」라는 다섯 자를 썼고, 왼편에는 「구정유구수전(龜井流求守殿)」라는 여섯 자를 썼으며, 이를 옷칠한 갑 속에 넣어 두었다는 것으로 보아 필시 <수길>이가 <축전수>에게 부신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비포 권관 이 영남이 그 왜장선에서 울산 사삿집 계집종 억대와 거제소녀 모리 등을 산채로 사로잡았는데, 신이 직접 문초한바, 억대의 답하는 내용에, 『날짜는 기억할 수 없으나, 15일전 왜적에게 포로되어 왜장에게 시집가서 늘 한곳에 있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신의 허망한 생각에 만약 저 적들이 형세가 불리하게 되어 배를 버리고 상륙하면 모조리 섬멸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우리들이 짐짓 포위한 진형을 해체하고 퇴군할 것을 보이면 적들이 필시 그 틈을 타서 배를 옮길 것이니 그때 좌우에서 추격하면 거의 섬멸할 수 있으리라.』 라고 전령한 뒤에 퇴군하여 한쪽을 개방하자, 층각선이 과연 개방된 수로를 따라 나오는데, 검은색 돛을 둘씩이나 달았으며, 다른 배들은 날개처럼 벌려 층각선을 옹위하며 바다로 노를 재촉하는 것이었으므로 우리의 여러 전선은 4면으로 포위하면서 재빠르게 협격을 가하고, 돌격장이 탄 거북선이 또 층각선 밑으로 달려가서 총통을 치솟아 층각선을 깨뜨리고, 여러 전선이 또 화전으로 그 비단 장막과 돛배를 쏘아 맞혔습니다.

그러자, 맹렬한 불길이 일어나고 층각 위에 않았던 왜장이 화살에 맞아 떨어졌습니다.

다른 왜선 4척은 이 창황한 틈을 타서 돛을 달고 북쪽으로 달아나려고 하였는데 신과 이억기 등이 거느린 여러 장수들은 패를 갈라서 접전하며, 또 모조리 포위하자, 적선중의 허다한 적도들은 혹은 물에 빠지기 바쁘고 혹은 기슭을 타고 올라가며 혹은 산으로 올라 북쪽으로 도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군사들은 창 칼 활 화살 등을 가지고 저마다 죽을 힘을 다해서 추격하여 머리 43급을 베고 왜선 전부를 불살라 버린 뒤에, 짐짓 배 한 척, 남겨둔 채 왜적들의 돌아갈 길을 개방해 두었으나, 이미 황혼이 짙어 어둑어둑하여 육상에 오른 왜적은 다 사로잡지 못하고, 이 억기와 함께 어둠을 타서 그 바다 어귀로 나와 진을 치고 밤을 지냈습니다.

6일 새벽에 방답 첨사 이 순신(李純信)<당항포에서 산으로 올라간 적들이 필시 남겨둔 배를 타고 새벽녘에 몰래 나올 것이라>하여 그가 통솔하는 전선을 거느리고 바다 어귀로 가서 적들이 나오는 것을 살피고 있다가 전부를 포획하고 급히 보고한 내용에, 오늘 새벽에 당항포 바다 어귀로 배를 옮겨서 잠깐 있는 동안 과연 왜선 1척이 바다 어귀로 나오는 것이므로 첨사가 불의에 돌격하였습니다.

 

1척에 타고 있는 왜적들은 거의 100여명이었는데, 우리편 배에서 먼저 지자 및 현자 총통을 쏘는 한편 장편전. 철환. 질려포. 대발화 등을 연달아 쏘고 던질 즈음에 왜적들은 마음이 급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허등지둥 도망하려 하였으므로 요구금을 이용하여 바다 가운데로 끌어 내자, 반이나 물에 뛰어들어 죽었습니다.


왜선에 포로된 우리 나라 사람을 찾아내어 생환하게 하는 것은 왜적의 목을 베는 것과 다름이 없으므로 <왜선을 불사를 때에는 각별히 찾아서 구해내고 함부로 죽이지 말라.>고 지시하고 약속하였습니다.

이번에 여러 장수들이 위의 지시에 따라 포로되었던 남녀 6명을 산채로 잡아내었습니다.

이들 중에 다른 사람들은 나이가 어리거나, 포로된 날자가 짧아서 적의 소행이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임진장초 당포-당항포해전 부분.



그래서 바다 가운데로 나와서는 다시금 여러 장수들에게 명령하여 「학익진」을 벌려서 일시에 진격하면 각각 지자. 현자. 승자 등의 각종 총통을 쏘아서 먼저 2,3척을 깨뜨리자, 여러 배의 적들이 사기가 꺾이어 도망치려 하였습니다.

여러 장수나 군사와 관리들이 승리한 기세로 흥분하며 앞을 다투어 돌진하면서 화살과 화전을 마구 발사하니, 그 형세가 바람과 우뢰같아, 적의 배를 불사르고 적을 사살하기를 일시에 거의 다 해버렸습니다.

수천 부사 권준이 제몸을 잊고 돌진하여 먼저 왜의 층각대선 1척을 깨뜨려서 바다 가운데서 온전히 사로잡고 왜장을 비롯하여 머리 10급을 베고, 우리나라 남자 1명을 산채로 빼앗았습니다.

광양 현감 어영담도 먼저 돌진하여 왜의 층각대선 1척을 깨뜨려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고 왜장을 쏘아 맞혀서 신의 배로 묶어왔는데, 문죄하기 전에 화살을 맞은 것이 중상이고 말이 통하지 않았으므로 즉시 목을 베었으며, 다른 왜적을 비롯하여 머리12급을 베고, 우리나라 사람 ·1명을 산채로 빼앗아 왔답니다.

사도 첨사 김완은 왜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왜장을 비롯하여 머리 16급을 베었고, 흥양 현감 배흥립이 왜 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8급을 베고, 또 많이 익사시켰습니다.

방답첨사 이순신(李純信)은 왜대선 1척을 바다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4급을 베었는데, 다만 사살하기에만 힘쓰고 머리를 베는 일에는 힘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2척을 쫓아가서 깨뜨리고 일시에 불살랐습니다.

좌돌격장 급제 이기남은 왜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사로잡아 머리 7급을 베었습니다.

좌별도장이며 본영의 군관인 전만호 윤사공과 고 안책 등은 층각선 2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6급을 베었습니다.

낙안군수 신호는 왜대선 1척을 바다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7급을 베었습니다.

녹도 만호정운은 층각대선 2척을 총통으로 속까지 꿰뚫은 것을 여러 전선이 협공하여 불사르고, 머리 3급 베고,우리 나라 사람 2명을 산채로 빼앗았습니다.

여도 권관 김인영은 왜대선 1척을 바다 가운데에서 온전히 사로잡아 머리 3급을 베었습니다.

발포만호 황정록은 층각선 1척을 여러 전선과 협공하여 힘을 모아 깨뜨리고 머리 2급을 베었습니다.

우별도장 전 호 송응민은 머리 2급을 베었습니다.

흥양 통장전현감 최천보는 머리 3급을 베었습니다.

참퇴장 전첨사 이응화는 머리1급을 베었습니다.

우돌격장 급제 박이량은 머리 1급을 베었습니다.

신이 타고있는 배에서는 머리 5급을 베었습니다.

유군 1령장 손윤문은 왜소선 2척에 총을 쏘고 산위에까지 추격하였습니다.

5령장 전봉사 최도전은 우리 나라 소년 3명을 산채로 빼앗았습니다.

그 나머지 왜대선 20척. 중선 17척. 소선 5척 등은 좌.우도의 여러 장수들이 힘을 모아 불살라 깨뜨렸으며, 화살을 맞고 물에 떨어져 익사한 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임진장초 한산해전



그때, 부산성 동쪽 한 산에서 5리쯤 되는 언덕밑 3개소에 진을 치고 있는 대ㆍ중ㆍ소선을 아울러서 대개 470여척이었는데, 우리의 위세를 바라보고 두려워서 감히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전선이 곧장 그 앞으로 돌진하자, 배안과 성안ㆍ산위ㆍ굴소에 있던 적들이 총통과 활을 잦고 거의 다 산으로 올라 6개처로 나누어서 내려다 보면서 철환과 화살을 빗발과 우박같이 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편전을 쏘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인 것 같았으며, 혹 대철환을 쏘기도 하는데, 주발덩이 만한 것이 우리배에 많이 떨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여러 장수들은 한층 더 분개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다투어 돌진하면서 천ㆍ지자 총통에다 장군전ㆍ피령전ㆍ장편전ㆍ철환 등을 일제히 발사하며 하루 종일 교전함에 적의 기세는 크게 꺾였습니다.

그래서, 적선100여척을 3도로 여러 장수들이 힘을 모아 깨뜨렸습니다.

화살을 맞아 죽은 왜적으로서 토굴속에 끌고 들어간 놈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으나, 배를 깨뜨리는 것이 급하여 머리를 벨 수는 없었습니다.



임진장초 부산포해전






대략 이정도 발췌.

뭐 이러한게 임진왜란 해전의 전개과정.

그동안 흔히 알려진대로 화포만 뿜뿜한 것과는 전혀 상황이 달리 나타남.

그리고 백병전을 아예 안한 것도 아니고 조선인을 구출하기 위해 왜선을 발살낼 때에 수색을 하라고 명령.

수색을 한다면 일단 도선을 해야한다는 것이잔슴?

또한 전투거리를 보면 화포나 화살이나 결정적인 차이도 안나타긔.

단지 이것임.

조선수군은 닥치고 도선백병전만 하는 것을 회피했을 뿐.

대신 화포모랄빵과 화살로 조지고 불화살로 불태운 뒤에 최후의 정리로 도선을 하던 것임.

그 과정에서 백병전의 비중이 '낮다'라고 할 수는 있어도 '그런거 없다' 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고.

다만 모든 해전이 그런 것은 아님.

부산포해전의 경우는 전투의 특성 때문이라도 다른 전투들에 비해 철저한 원거리 지향이 나타남.

근데 그 부산포 해전마저도 왜군과 조선군이 서로 화살쏘고 총쏘고 으아악 할 정도 거리까지는 접근했다는게 문제(...)


즉 화포는 조선수군 승리의 중요수단이지만 전체가 아님.

백병전에 관해서도 조선수군은 닥치고 백병전'만'하는 것을 지양했을 뿐 마지막 수단으로써 백병전은 당연하단듯이 했고. 



PS.참고로 조선수군이 일반적으로 알려진대로 화포 뿜뿜뿜으로만 해전을 하면 해전 한번에 수영 1년분 화약생산량은 족히 날려먹음(...) 현자총통 20문으로 '통일'하여 제자리 회전으로 양측 포문 한번씩만 쏜다고 가정시 무려 250근 소모(...) 이순신이 원균에 통제사 인계 당시 조선수군 화약 보유량은 4000근(...)

덧글

  • 연성재거사 2015/04/29 10:57 # 답글

    게다가 그렇게 쏜다고 다 맞지도 않을 것 같다는게 함정. -_-;
    왜구를 격퇴하는데 총통이 긴요하게 쓰인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화약도 비싸고 효율을 감안하면 제한적으로 사용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애당초 순수 함포전을 볼려면 서구에서도 몇세기는 더 기다려야 하고 말입니다. ㄱ-
  • 금린어 2015/04/29 11:03 # 답글

    당시 해전 양상을 '조선군 전열에 어택땅 하다가 도달하기도 전에 전부 가라앉는 왜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긴 한 것 같습니다.

    전에도 몇가지 자료를 들어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심지어 왜선은 조선 수군 근처에 도달하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는 식의 주장이었습니다. 근거랍시고 제시한 문서에서 바로 다음 문장이 조선측에서 낫을 던져 도망하려는 왜선을 결박하고 막타를 날리는 것이었거든요; 낫을 인력으로 던져 배를 결박하려면 당연히 매우 가까운 거리라는 것인데, 보려는 것만 보려는 사람들은 그 조차도 찾지 못하더라고요.
  • 아마 2015/04/29 11:10 # 삭제 답글

    순신 이 장군이 다른 점을 설명하기 힘들어서...


    이순신 장군 함대가 대포를 뻥뻥 쏘니 왜군이 살살 녹더라~~

    그런데 실제로는 부하를 열심히 굴려서 그런거고ㅡ나머지 장수들이 불합격...
  • Fedaykin 2015/04/29 11:55 # 답글

    총포 거리에서 쏟아지는 조란환과 화포를 생각하면...멀리서 두들길필요가 없지요
  • rezen 2015/04/29 15:38 # 답글

    명량때 생각나네요. 틀렸다고 지적한 애들이 더 틀렸으니...
  • 레이오트 2015/04/29 16:46 # 답글

    조선 수군은 장병겸이라고 하여 보딩 시도하는 적군을 말그대로 쓸어버리는 초대형 낫을 상당히 중시했다고 하며,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보면 일본어에 능통해 일본군 포로 심문시 통역을 담당하는 격군장이 이 장병겸을 잘 쓴다고 묘사하지요.
  • 누군가의친구 2015/04/29 17:28 # 답글

    심지어는 도주하는 일본 전선에다가 갈고리륻 던져서 끌어당긴 다음 화살을 퍼붓는 흉악한 조선수군이니...ㄱ-
  • 소울오브로드 2015/04/29 18:13 # 답글

    좀 작은 애들은 판옥선이 들이받는 방법도 있죠...
  • ㅇㅇ 2015/04/30 00:34 # 삭제 답글

    무관들은 그렇다쳐도 사또님들 무력이 왜 이렇게 센거지??
  • 안로그인 2015/04/30 12:31 # 삭제

    사또나리들 고시 패쓰하기 전에 뭐였나요.
    넵.
    지나가던 조선 선비였습니다.
    정리 끝.
  • 골든 리트리버 2015/04/30 20:42 #

    전투에 참전한 지방관들은 순천부사 권준을 제외하고 모두 무과에 급제했습니다.
  • Mr 스노우 2015/05/01 05:21 #

    조선은 변경 지역의 수령은 무관 출신을 주로 임명했습니다.
  • 일화 2015/04/30 17:22 # 답글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시대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네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1 이글루스 TOP 100

통계 위젯 (화이트)

116167
1202
1299434